정윤하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21세기는 과학기술의 시대이다. 과학기술은 백조(白鳥)를 닮았다. 결과물은 매우 우아하고 획기적이다. 성과물이 나오기 까지 물밑에서 수없이 많은 발이 움직이고 있다. 그 과정은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연구원들의 발짓이 우아한 백조를 만드는 하나의 밑거름이다. 과학기술은 또한 백조(百兆)시대를 열 것이다. 하나의 기술이 100조 원의 가치를 창출한다. '백조 실험실'은 하나의 성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실험실 현장의 이야기를 매주 한 번씩 담는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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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기른 쥐가 1000마리를 넘어요. 아이 둘보다 쥐에게 제 시간을 맞추며 늘 살아야 했죠."
정윤하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37)이 쥐와 맺은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험 실습을 하는데 "쥐를 해부할 사람?"이라는 말에 호기심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쥐는 정 박사에게 가장 소중한 파트너가 됐다. 연구원에 있을 때면 종일 약 100 마리의 쥐들과 시간을 보내는 정 박사는 "외부손님을 만날 때 온 몸에 쥐 냄새가 배어버려 민망할 때가 종종 있었다"며 "결혼 전에 데이트를 할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살아있는 동물을 연구하다 보니 365일 25시간을 쥐에 맞춰야 한다. 정확한 결과를 얻으려면 쥐가 사는 환경을 일정하게 조절해 줘야 한다. 나이나 생리적 변화에 딱 맞는 순간에만 실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둘이나 키우고 있는 정 박사는 쥐 실험이 잡히면 아무리 아이가 아파도 직접 병원에 데리고 갈 수가 없다. 정 박사는 "워킹맘의 비애"라며 안타까워했다.
자식처럼 정성을 쏟은 쥐들은 정 박사에게 최근 큰 선물을 안겨줬다. 전두엽 치매 등 뇌질환과 관련된 수수께끼 유전자(cryptic exons)가 쥐의 세포 유형마다 종류가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것이다. 이 연구는 지난 2월2일자 '몰레큘러 뉴로디제너레이션'에 발표됐다. 이 유전자는 퇴행성 뇌질환의 조기 진단 마커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퇴행성 뇌질환은 조기 진단을 통해 조금이라도 빨리 대비하는 것이 아직은 최선이다.
"이번 연구에는 16년 동안 저와 함께한 쥐들의 공이 컸어요. 여러 해를 교감하다 보면 쥐들도 제 체취를 기억하고 제 손길에 익숙해져요. 아무리 조심스럽게 만져도 다른 사람이 접촉하면 쥐들이 놀라서 날뛸 때가 있거든요. 대학 다닐 때는 향수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제 삶에서 없어진 하나의 '아이템'이 돼 버렸죠."
그는 오늘도 쥐들과 함께 새로운 협동(?) 연구를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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