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 줄곧 모든 의혹을 부인해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지만,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반년 가까운 수사망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태도는 오히려 구속의 명분을 쌓으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31일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한 검찰은 지난 27일 접수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그간 드러난 13개 혐의를 모두 적시했다. ▲삼성 뇌물수수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미르ㆍK스포츠재단 강제모금 ▲최순실씨 이권 관련 대기업 인사ㆍ일감 압박 등이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박 전 대통령의 혐의가 중대한 점,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점, 공모 혐의자 13명 중 10명과 뇌물공여 혐의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명이 구속돼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으면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하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특히 "그동안 다수의 증거가 수집됐지만 박 전 대통령이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는 등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상존한다"고 강조했다. 사태가 불거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내내 혐의를 부인하고 대면조사와 압수수색을 거부한 태도가 부메랑이 된 셈이다.
헌법재판소 또한 파면 결정문에서 이런 태도를 지적한 뒤 "박 전 대통령에게서 헌법 수호 의지를 확인할 수 없다"며 파면의 근거 중 하나로 삼았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들은 전날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심사)에서 형사상 불구속 수사의 원칙 등을 고려하면 굳이 구속 상태로 수사하고 재판에 넘길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며 검찰에 맞섰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필요할뿐더러 자택에서 '칩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구속 공모 혐의자들과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는 역으로 '공모 혐의자들이 대부분 구속돼있는 만큼 증거가 인멸 또는 훼손될 가능성이 낮고, 따라서 이를 구속의 이유로만 봐선 안 된다'고 법정에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원은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라면서 박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배척하고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검찰로서는 본안 재판에 앞서 그간의 수사를 법원으로부터 한 차례 인정 받은 셈이다.
지난해 10월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선 검찰은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 등을 구속기소한 뒤 특검에 바통을 넘겼다.
특검은 이후 90일간의 수사를 통해 '왕실장'으로 위세를 떨쳤던 박 전 대통령의 측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30명을 구속 또는 불구속 상태로 기소했다.
검찰이 미르ㆍK스포츠재단 등 '박근혜ㆍ최순실 재단'에 대한 대기업들의 강제모금 등 직권남용 혐의에 초점을 맞췄다면 특검은 박 전 대통령 측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이의 뇌물수수,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추가로 수사해 혐의를 드러냈다.
'2기 특수본' 체제로 다시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지난 21일 박 전 대통령을 공개소환ㆍ대면조사한 데 이어 약 닷새 간의 고민 끝에 결국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8개 범죄사실을, 특검은 5개 범죄사실을 포착했고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이들 범죄사실 전부가 적시됐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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