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이복형 존재 인정하면 가능하지만 '무연고자' 분류 기다렸다 인도 요구할 가능성 더 커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말레이시아가 'VX' 공격으로 사망한 남성의 신원을 김정남으로 공식 확인하면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유가족 지위를 인정받아 시신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말레이시아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남의 신원 확인은 사실상 북한 측에 김정남 시신을 인도 받을 권리를 인정한 셈"이라고 12일 전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이) 결심만 한다면 시신은 합법적으로 그에게 인도될 것"이라면서 "만약 다른 직계가족도 인도를 요구해 경합이 벌어질 경우에는 (말레이시아) 검찰총장에게 판단을 묻게 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아니파 아만 말레이 외무장관도 이같은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전날 기자들과 자리에서 "결국 우리는 시신을 누군가에게 인도할 것이다. 시신을 인도받는 주체는 북한 정부가 될 수도, (김정남의) 가족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김정남의 존재를 계속해서 부정해 온 점을 고려할 때 김정은 위원장 명의로 시신을 인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까지 백두혈통인 이복형의 존재를 부정해왔고 북한 내에서 이같은 사실이 확산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 김정은이 돌연 이를 인정하고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남이 사망한 지난달 13일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사망자가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이 아닌 여권 기재명인 김철이란 이름의 북한 국적자라고 주장해왔다. 만일 김정은 위원장이 유가족 지위를 내세우고 나오면 지금까지 북한 주장을 모두 뒤흔드는 모순에 빠지게 되고, 이는 오히려 북한의 암살 배후설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된다.
이 때문에 북한은 김정남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국적 국가란 점을 내세워 시신 인도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김한솔을 포함한 김정남의 부인과 자녀들이 신변위협을 무릅쓰고 시신 인수를 위해 말레이를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도 이 전망에 힘을 싣는다. 현재 김한솔과 모친 이혜경, 여동생 솔희는 중국의 보호 아래 제3국에 도피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말레이 경찰 소식통은 "외국인 사망 사건의 경우 일정기간 가족이 나서지 않으면 국적국 대사관에 알리게 돼있다"면서 "대사관 측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응답하지 않을 때만 말레이 당국이 시신 처리 방안을 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앞서 할릿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피살자의 신원이 김정남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만간 김정남의 시신을 말레이 보건부에 인계할 계획이다. 보건부 내부 규정은 사망자의 가족이 나타날 때까지 통상 14일간 시신을 보관한 뒤 관련 절차를 밟게돼 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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