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아버지 고 최태민씨부터 인연 맺어
이들에게 지나치게 의존…비선실세 키워
朴 "최순실은 생필품 등 도움 준 사람…경계 못해 늦은 후회"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피청구인(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위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헌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한 것입니다.…(중략) 그런데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하였습니다."(3월10일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결국 최측근인 '최순실'로 인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됐다. 최씨의 아버지인 고 최태민씨부터 시작된 대를 이은 40여 년의 인연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막을 내리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에 보낸 서면 진술에서 "최순실은 지난 40여 년간 가족들이 있으면 챙겨줄 옷가지 생필품 등을 도와줬던 사람"이라면서 "제 주변에서 사심을 내비친 적 없어 믿음을 가졌는데, 돌이켜보면 저의 그런 믿음을 경계했어야 했다는 늦은 후회가 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 일가와 인연을 맺은 것은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1974년 8·15경축식장에서 간첩 문세광의 총탄을 맞고 서거한 직후로 알려져 있다. 평소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컸던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충격으로 목사신분이었다고 주장하는 최태민씨에게 의존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찬바람이 불었다"며 어머니를 잃은 충격을 표현했다.
최태민은 박 전 대통령의 이런 심정을 노렸다고 한다. 그는 1970년대 초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 교리를 합쳤다는 '영세교' 교주로 행세하면서 당시 영애였던 박 전 대통령에게 접근했다. 1975년 3월부터 편지를 통해 "꿈에 돌아가신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가 국모감이니 잘 도와주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최태민은 이후 박 전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구국선교단, 대한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총재를 지내며 청와대를 출입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명예총재를 맡았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재벌들로부터 돈을 챙기는 등 권력형 비리와 이권에 개입하는 비리를 저질러 당시 중앙정보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의 딸인 최순실이 미르와 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재벌들로부터 갹출한 수법과 유사하다.
박 전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잠시 사라졌던 최태민은 1988년 박 전 대통령이 고 박정희 육영수 기념사업회를 발족하자 고문자격으로 나타났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는 육영재단을 배후에서 좌지우지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는 1990년 박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박지만씨와의 분쟁으로 번졌다. 급기야 근령씨와 지만씨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 "최태민을 언니로부터 떼내 엄벌에 처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이후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그만두면서 최 목사가 전횡을 저질렀다는 소문에 대해 "누구로부터 조종받는다는 말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며 "사업을 도와준 것 외에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고 두둔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태민이 1994년 사망하자 그의 다섯번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딸인 최순실과 가깝게 지냈다. 2014년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으로 구속됐던 박관천 전 경정은 최순실에 대해 '박 대통령의 오장육부'라고 표현할 정도로 박 대통령과 최씨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공개석상에서 함께 모습을 드러낸 시점은 1979년 새마음제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새마음봉사단 총재 자격으로, 최씨는 전국새마음대학생 총연합회장으로 참석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예고도 없이 불쑥 행사장을 찾았다고 한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이 한동안 어려움을 겪은 시절에도 곁을 지킨 인연으로 유명하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25일 대국민사과에서 최씨에 대해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줬다"며 "오랜 인연 때문에 도움을 받게됐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인연은 그러나 대를 이어 박 전 대통령의 권력에 기대어 호가호위하는 계기가 됐고 결국 비선실세 의혹으로 번지게 됐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성향과도 무관치 않다. 박 전 대통령은 측근의 잘못을 지적하는 언론보도에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오히려 그 측근을 두둔해왔다.
박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성향은 결국 부메랑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줬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돌이켜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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