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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잠실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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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비가 100원, 자장면이 400원이던 시절이니 말 그대로 '아재시대'의 얘기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어린이 회원' 가입이 유행처럼 번졌다. 초등학교 등하굣길에는 프로야구 구단 점퍼를 입은 아이들이 많았다.
OB베어스, 해태타이거즈, 삼성라이온즈, MBC청룡, 롯데자이언츠 등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일부는 팀명을 교체) 전통의 구단을 선택한 아이들이 더 많았지만, 화려한 선물 공세를 앞세운 삼미슈퍼스타즈를 선택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어린이 회원 가입비용은 5000원으로 당시 물가를 고려할 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부러운 눈길로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내 모습이 측은했는지 '누군가' 내게 거금을 투자했다. 그리고 어느 구단의 야구점퍼를 입혔다. '연필, 스티커, 모자….' 프로야구팀 로고가 찍힌 각종 선물도 내게 안겼다.

내 점퍼에는 'OB베어스'라는 로고가 찍혀 있었다. 왜 OB베어스가 선택됐는지는 잘 모른다. 나는 선택권이 없었고, 그분의 뜻이었다. 당시에는 그분의 '큰 그림'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지 못했다. 그분의 뜻에 따랐다면 원년부터 우승팀 팬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당시만 해도 OB베어스의 연고지는 충청도 지역이었다. 서울에 살던 다른 친척들은 대부분 고향 팀(OB베어스)을 응원했지만, 왠지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서울은 당연히 ○○팬이지." 그 선택이 훗날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당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후 35년간 겪었던 일을 떠올려보면 '눈물의 드라마'와 다름없다. "○○팬으로 산다는 것은 극한직업과 다름없다며?" 다른 팀 팬들의 놀림에 화를 내기는커녕 수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더 서글펐다.


우승을 밥 먹듯이 하던 '파란 피'의 어느 팀이나, '최강□□'이라는 구호를 팀 성적으로 증명하는 또 다른 팀을 선택했다면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을 텐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좋아하는 팀을 버리고 다른 팀으로 말을 갈아타는 것은 국적 바꾸기보다 어렵다는데….


지금까지는 혼자 감내해야 할 특정 팀의 팬 생활이었지만,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아빠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민의 시간이 다가왔다. 올해부터는 아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을 예정이다. 아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결정할 생각이란다.


물론 선택은 아들의 몫이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35년 전 그분처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잠실의 함성'을 다시 느낄 그 날이 오면 멋진 모자와 유니폼을 아들에게 안겨줄 생각이다.


아들이 아빠와 함께해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찜찜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극한직업으로까지 불리는 그 팀의 팬 생활을 아들에게 대물림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두고두고 원망하게 될 수도 있는데….' 아빠의 마음을 읽었는지 엄마가 한마디 거든다. "야구할 때마다 집안 분위기는 어쩌려고요." 아내는 이미 극한직업 부자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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