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진 "나이들면 낙상하기 쉬우니 집에 있는 게 좋다"
정병국 "안철수 전 대표와 비슷한 전철 밟을 것",
"주변 사람들이 반 전 총장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潘, 불출마 결심하고 여야 3당 대표와 회동
潘 "지지율이 떨어져 걱정…나는 乙일 뿐" 자조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추운 겨울 돌아다니다가 '낙상'할 수 있다.”(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에게 이날 하루는 유난히 긴 시간이었다.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지난 12일 귀국 직후 “정치 교체를 이루겠다”며 포부를 밝혔던 반 전 총장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스스로 낙마했다.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가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로 상처만 입었다”면서 불출마의 변을 밝힌 것이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정의당 등 여야 3당을 잇따라 방문한 반 전 총장은 이날 오후 예고없이 국회 정론관을 찾아 “정치 교체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말했다.
첫 방문지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선 덕담과 함께 뼈있는 말들이 오갔다. "개헌에 드라이브를 걸자는 뜻에서 (개헌협의체를) 제안했다"며 새누리당의 협조를 구했고 새누리당 지도부도 이에 화답했다. 실제로 회동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선 '대선 전 개헌'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인명진 위원장은 “우리 당은 이제 친박(친박근혜)이 아니고 패권도 사라졌다”며 “나이가 들어 미끄러져 낙상하면 큰일이다. 특히 겨울엔 미끄러워서 여기저기 다니면 낙상하기 쉬워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좋다"는 농담을 던졌다. '낙마'를 뜻하는 낙상이란 단어를 썼는데 우연찮게 맞아 떨어진 셈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최근 반 전 총장 측 핵심인사에게 전화가 와 자신에게 '캠프를 운영하는 법'을 물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선거 경험이 전무한 ‘아마추어’ 참모들이 반 전 총장 주변에 널려있다는 얘기다.
반 전 총장은 바른정당에서도 정병국 대표 등 지도부에게 "국민 대통합에 앞장서 달라"며 "좀 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반면 반 전 총장 영입에 적극적으로 매달려온 바른정당 지도부는 우회적으로 반 전 총장의 입당을 압박했다.
설 민심을 거치면서도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한 반 전 총장 측이 여전히 손을 잡는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나온 반응으로 풀이된다.
바른정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오전 지도부와 이뤄진 비공개 회동에서 반 전 총장은 다소 껄끄러운 질문들을 받았다.
정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오늘 처음으로 (귀국한) 반 전 총장을 만났다”면서 “들어오기 전에 간접적으로 교감했는데 들어오고 난 뒤 상황이 바뀌었고, 요즘에 와서 다시 바뀐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귀국 전 바른정당 입당을 놓고 어느 정도 양 측이 교감을 이뤘으나 상황이 계속 꼬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외교관 그룹이 주축을 이룬 참모진을 겨냥해 “나쁜 사람들”이라고 일갈했다.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메시지 전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여전히 자신들의 이익만 앞세우며 반 전 총장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설명이다.
정 대표는 “(직접적인 출마선언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행보에 대해 저희가 보는 관점을 그대로 말씀드렸고, 향후 행보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많은 사람의 말씀 듣고 있다'던 반 전 총장이 발언을 인용,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때도 가능하면 후보는 캠프에 가지 않는다. 만나는 사람이 후보 얼굴을 쳐다보고 눈도장 찍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사람들을 다 만나면 판단의 근거가 흐려진다고 조언했다”면서 “누구나 찾아와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는데, 들어보면 모두 그럴 듯하다. 취사선택을 해서 내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데 그게 없다”고 말했다.
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반 전 총장을 비교해 “결국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대선 낙마를 사실상 예견한 셈이다. 초기에는 기성 정치인과 다를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으나 이 같은 기대가 무너지면 지지율 회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란 얘기였다.
다만 정 대표는 “반 전 총장이 우리 당에 오시면 유승민·남경필 등 50대 주자들과 경쟁하면서 상호 보완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우리 당은 3선 이상이 대부분”이라며 “이정도 의원들이 들어오는 곳”이라고 간접적으로 반 전 총장에게 입당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제원 대변인도 '외교와 정치의 공통점은 어니스티(정직)'라는 반 전 총장의 발언을 기자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장 대변인은 “총장께서 왜 (기성정치인과 다른) 그런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시지 못하시냐고 물었다”고 덧붙였다.
동석한 다른 최고위원들도 ‘팔리는 상품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입당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 전 총장은 이에 대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건강은 괜찮으시냐’는 최고위원들의 안부 인사에 “총장 때는 세팅을 해놓은 곳에 잠깐 들러 일처리만 하면 됐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두 내가 만들어야 하고 (나는) 을(乙)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결국 반 전 총장은 불과 몇 시간 뒤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정치교체의 명분이 실종됐고,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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