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김보경 기자]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25일 "지난해 12월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며 강력한 대권 의지를 드러냈다. "최순실 사태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고 가족들과 협의한 뒤 최대한 노력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지만, 대선 출마를 결심한 시기를 놓고 향후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지내고 회고록을 쓰거나 강의를 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짧은 시간이지만 최대한 노력하기로 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결심을 한 건 최순실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등 불행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을 만나면서 국민들의 염원이 무엇인지 잘 들으라고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해선 희망이 없다고 하더라"면서 "그래서 (국민들에게 나에 대한) 신임을 물어보는 게 어떠냐고 가족과 협의했다"고 덧붙였다. 또 "사생결단으로 권력을 잡겠다는, 남을 헐뜯고 무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으려는 게 권력의지라면 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반 전 총장의 답변은 곧바로 정치권에서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이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준비기간을 갖고 대선 레이스에 뛰들면서 짧은 정치 경력과 함께 준비부족이라는 약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경쟁을 해야 하는데 (다른 후보들은) 350m쯤 앞서 계신 것 같고 저는 출발선에서 막 출발하려는 것 같다"면서도 "국가를 위해 봉사하려는 정신에 있어선 준비가 돼 있다"고 해명했다.
무엇보다 이날 발언은 지난해 5월 반 전 총장이 귀국해 벌인 대권 행보와 괴리된다. 당시 국내에선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 결심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미 김숙 전 유엔 대사 등 측근들은 반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하면 벌어질 일들을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다른 측근들도 "반 전 총장이 가난과 기아에 찌든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한국 사회의 여러 사회적 모순들을 해결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 같다"며 출마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미 현지 관계자들을 통해서 반 전 총장 가족 가운데 유니세프를 거쳐 유엔 인구기금 등에서 활동한 인도인 둘째 사위가 대선 출마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부인 유순택씨는 출마를 반대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반 전 총장이 출마 결심 시기를 늦춰 말한 건 유엔 사무총장 재임 중 대권 출마를 결심했다는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반 전 총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최순실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 내가 (여론조사에서) 많이 앞서 있었다"면서 "(국민들이) 앞선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나를 같이 보는 경향이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의 (내가 당선되면 박근혜 정권의) '정권연장'이란 발언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일한 적도 없고, (나는) 한 점의 때도 묻지 않은 정치 신인"이라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