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에겐 무엇보다 꽃이 필요해요
오르페우스는 입을 다물었다
누구나 기꺼이 죽음의 길을 가고
누구나 즐겁게 다시 육신의 길로 갈 수 없나요
이 별에서,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라, 그들은 힘들게 죽는다
힘들게, 마지못해서
얼마나 많은 시체가 매장되지 못한 채 저 들판에 널려 있는지
단 한 송이의 꽃도 남지 않았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새로운 생각에 잠겨 들판을 가로질렀다
저편 노을 아래로 화염에 휩싸인 큰 도시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 오르페우스와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 간의 절절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는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독사에 물려 죽은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지하 세계로까지 내려간 그 열렬한 사랑과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마저 감동시킨 황홀한 연주, 그리고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은 순결함, 급기야 시기와 질투에 눈먼 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오르페우스의 일생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시 또한 어느 한편으로는 오르페우스의 더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삶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은 그보다 "이 별"의 사람들을 향해 있다. "누구나 기꺼이 죽음의 길을 가고/누구나 즐겁게 다시 육신의 길로 갈 수" 있다면 죽음은 차라리 또 다른 삶을 향한 즐거운 매듭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별에서,/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라, 그들은 힘들게 죽는다/힘들게, 마지못해서". 이 시를 두고 나는 단지 필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한 운명 따위나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보라". 시인은 "힘들게, 마지못해서" 죽은, 그 "시체가 매장되지 못한 채 저 들판에 널려 있는" "이 별"의 사람들, "저편 노을 아래로 화염에 휩싸인 큰 도시"에 대해 적고 있지 않은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사지가 수천 갈래로 찢기고 머리가 잘린 뒤에도 자신의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