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12일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을 둘러싼 국민들의 의혹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이날 10년 만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영구 귀국한 반 전 총장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평소의 '기름장어'란 별명처럼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주변에선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돌았다.
평소의 정치적 색채와 정책, 인맥 등 다양한 의문들이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이날 적절한 설명이 뒤따를 것이라 기대했던 국민들은 오히려 궁금증만 증폭됐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인식,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입장, 주변국과의 외교갈등을 풀 수 있는 해법 등에 대해 모두 기대 이하의 답변만 내놨다는 얘기다.
이날 귀국과 함께 대선 출마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반 전 총장은 자신을 둘러싼 논란과 의혹에 대해선 간단한 답변에 그쳤다.
그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왜 내 이름이 거론되는지 모르겠다.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또 "박씨가 내게 무슨 금품을 전달했다는 데, 제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진실에서 조금도 틀림이 없다. 얼마든지 자신있게 말하겠다"고 덧붙였다.
반 전 총장은 친동생인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가 뇌물 공여 혐의로 미국 뉴욕의 연방법원에서 기소된 사건에 대해선 입장 표명을 자제했다. 뉴욕 연방검찰은 기상-주현 부자에 대해 각각 최대 30년, 62년에 해당하는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조카인 주현씨가 카타르 관리에게 부적절한 방식으로 부동산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명성'을 언급하며 압박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 퇴임 직후 대선 출마가 가능하냐는 기자들의 질의에는 "아직 출마를 (정식으로) 발표하지 않았다"면서 "'유엔 협약'은 선출직과 관련된 정치적 행보를 막는 조항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또 공직선거법상 출마 직전 국내 거주와 관련된 질문에는 "이런 질문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면서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중앙선관위가 이미 문제가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는데 그럼에도 자꾸 그 문제가 나오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답했다.
논란이 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대해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정부의 노력을 환영한 것이지, 합의 내용 자체를 환영한 건 아니었다"며 기존의 입장을 반복했다. 다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恨)을 풀어줄 정도의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문제 역시 "최근 부산 소녀상 건립과 관련해 일본 정부로부터 여러가지 이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너무 근시안적으로 볼 게 아니라 과거를 직시한 미래지향적 방향에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원론적 답변으로 귀결됐다.
이날 반 전 총장의 귀국 메시지는 다양한 외교 현안과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원론적 수준의 답변에 그쳤다는 평가를 들었다. 반 전 총장은 위안부 합의 이행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불거진 한일, 한중 간 갈등에 대해선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우리 경제와 안보, 통상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북핵 문제를 비롯해 미·러·일·중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서 여기에 따른 대책을 우리가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날 반 전 총장의 메시지는 "'패권과 기득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친박(친박근혜)·친문(친문재인) 세력을 견제한 것 외에는 뚜렷한 결과물이 없었고 수사적 어휘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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