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에 외압···금주 내 구속영장 청구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첫 신병 확보 상대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됐다. 첫 압수수색도, 첫 체포자도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규명을 겨냥했다.
특검은 28일 오전 1시45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문 전 장관을 긴급체포했다. 특검은 지난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 의결하는 데 복지부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오전 당시 복지부 장관으로 근무한 문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특검은 그간 확보한 물증·진술을 토대로 문 전 장관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특검은 체포시한(48시간) 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정할 방침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작년 5월 26일 합병계획을 발표하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공식 자문기관이던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비롯한 국내외 의결권자문기관들은 줄줄이 반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분이 전무했던 삼성물산의 가치를 저평가해 총수일가는 득을 보고, 일반 주주는 물론 2대 주주 지위에 있던 국민연금(당시 지분율 11.21%)조차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7월 10일 홍완선 전 본부장 등 내부인사만 참여한 투자위원회를 거쳐 3시간 반 만에 찬성으로 결론냈다. 결국 같은달 17일 합병계약 승인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며 찬성률 69.53%로 가결돼 통합 삼성물산은 실질적인 지주사로 자리매김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국민연금기금운용규정 및 시행규칙,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 등에 따르도록 되어있다. 국민연금이 자체적으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정하기 곤란할 경우 외부 민간 전문가 그룹으로 꾸려진 보건복지부 산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이를 대신한다. 불과 한 달 전 의결위가 SK와 SK C&C 합병안에 대해 주주가치 훼손을 근거로 반대해 독자 결정은 곧 찬성 의지로 읽혔다.
특검은 공식 수사개시 당일인 지난 2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복지부 연금정책국, 관계자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고 복지부 내 기금운용 업무를 담당하는 국·과장들을 잇달아 조사했다.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을 통해 청와대의 합병안 찬성 지시를 전한 의혹이 불거진 김진수 전 보건복지비서관, 문 전 장관의 주거지도 26일 압수수색했다. 홍 전 본부장, 안 전 수석도 차례로 특검에 불려왔다.
특검은 조사 과정에서 문 전 장관이 합병안에 반대 의결 가능성이 높은 의결위 대신 내부 투자위를 통해 의사 결정이 이뤄지도록 지시한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전 장관, 홍 전 본부장이 내부 인적 구성을 틀어 찬성 의결이 용이하도록 간여한 정황도 제기됐다.
특검은 국민연금이 손실 위험을 감수하고 의사결정 구조를 흔든 배경이 박 대통령에 대한 삼성의 부정한 청탁에 따른 것인지 집중 규명할 방침이다. 출국금지 상태인 이재용 부회장도 조만간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많은 204억원을 출연하고, 최씨 일가에 94억여원을 특혜지원해 대통령과 ‘비선실세-경영승계’ 지원을 맞교환한 의혹을 받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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