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편집위원]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출마를 선언하자마자 검증대에 올랐다. 그가 통과해야 할 첫 관문은 한 주간지가 제기한 '23만달러 수수 의혹'이다. 10년 전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 박연차 전 태광그룹 회장 한테서 20만달러, 유엔 사무총장 취임 후 3만달러를 각각 받았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제1 야당은 즉각적인 검찰 수사를 촉구했고 시민들은 '네티즌 수사대'를 가동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시사저널은 지난 24일 박 전 회장의 지인과 사정당국 관계자 등 복수의 증언을 인용해 반 총장이 23만달러를 받았다고 보도해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반 총장은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진화에 나섰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한국 특파원들에게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완전히 근거 없는 허위"라면서 "시사저널 편집장에게 공문을 보내 사과와 기사 취소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반 총장 측 인사도 언론통화에서 "음습한 음해의 냄새가 난다. 무슨 배경에서 그런 보도가 나오는 지 알 수 없다"고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회장 측도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태광실업 측은 명예훼손과 민형사상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의혹은 이미 2009년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이후 검찰과 정치권에서 소문으로 나온 것이었지만 당사자들이 부인하고 증거가 나오지 않아서 보도되지 않았던 것이다. 설(設)이 기사가 되면서 진실규명은 불가피해졌다.
반 총장과 여론조사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에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다'는 해명은 '주사는 놨는데 주사를 놓은 사람이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변명과 닮았다"면서 "검찰은 신속히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새누리당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대한민국의 자랑이고 미래세대에 위인으로 기억될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무책임한 의혹 공세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고 했다. 가칭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김성태 의원은 "검증을 시작하려면 정책과 철학, 역량과 자질에 대한 검증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라고 민주당을 반박했다.
검찰 입장은 뭘까? 검찰 측은 반 총장이 명예훼손을 문제 삼아 고소하면 사실 확인 차원에서 조사가 진행될 수는 있다는 입장이다.
여론은 비등하고 있다. 수사 촉구와 반 총장의 해명 요구, 야당 비난과 여당 지지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한 네티즌은 일간지 기사에 단 댓글에서 "금품수수 의혹을 당사자들이 시인한 경우는 없다"면서 "사실이라도 현행 뇌물 수수법은 '대가성ㅇ이 없었다'면 속수무책이다. 뇌물수수법에서 '대가성 없다'를 수정, 삭제하자는 어떠한 시민단체도 없다"고 꼬집었다. 'STONY'라는 네티즌은 "박연차 다이어리를 공개해라. 거기에 다 있단다. 왜 공개 안 하나"라고 물었다. 이모씨는 "어느 음식점인가. 미국에서 받았다면 미국언론에서 가만있었겠나"면서 "한국인가. 왜 네티즌수사대. 파파라치 많지 않나"며 네티즌 수사대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또 경모씨는 "정치꾼과 언론, 지저분한 기업인들이 잡설로 대한민국의 품격을 떨어뜨려 웃음거리로 만드는 짓들을 하고 있다"고 반 총장 편을 들었다.
이번 의혹제기는 유력 대권 주자인 반 총장에게 불리한 이슈들이 하나둘 공개되는 검증의 첫 번째 관문이 열린 것일 뿐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나라를 위해 한 몸 불사르겠다"며 대권출마를 선언한 반 총장은 과연 혹독하고 좁은 검증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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