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시', '주먹쥐고 치삼', '파란 나라' 등 현실 문제 다뤄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연극은 시대의 거울이다. 거울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단상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뼈아픈 문제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 연극 작품을 통해서는 관객들이 무엇을 느끼게 될까. 위안부 문제, 여배우 성 상납 사건,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 화상환자들에 대한 편견, 교실안의 전체주의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본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녹록치 않다.
연극 '빨간시'는 일제가 자행한 위안부 사건과 몇 년 전에 한 꽃다운 여배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여배우 성상납 사건을 다룬다. 극단 고래의 대표 이해성 작가(47)는 시대적 차이가 나는 두 사건에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들이 거대한 힘과 권력에 의해 짓밟혔다는 점. 그리고 가해자들이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는 점. 작품 속 주인공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피해 여성들의 고통과 상처를 관객들의 눈앞에 펼쳐낸다. 실제로 이해성 작가는 2005년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에 참석했으며, 현재는 극단 고래의 단원들까지도 자발적으로 집회에 나가고 있다.
'빨간시'는 위안부와 성상납, 두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침묵에 집중한다. 하나는 가해자의 침묵이고, 두 번째는 피해자들의 강요된 침묵이며, 마지막은 이 사건을 지켜본 우리들의 침묵이다.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치유가 돼", "치유되지 않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 다른 이의 고통으로 흘러 다니게 돼" 등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은 침묵에 맞서 "이제는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4년 제7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희곡상, 작품상, 여자연기상을 휩쓸었다. 12월6일부터 16일까지는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12월21일부터 31일까지는 서울 대학로 게일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소방관들의 처우개선을 문제삼은 작품도 있다. 연극 '주먹쥐고 치삼'은 화상환자가 겪게 되는 사회적 인식 개선과 소방공무원이 겪고 있는 심리적불안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기획됐다. 화상환자를 후원하는 베스티안 재단이 주관했다.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4월에는 얼굴을 그을린 한 소방관이 화재현장 한 구석에서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는 사진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각종 사고 위험에 노출되고 열이나 화학물질 등에 건강을 위협받는 소방공무원의 처우를 개선하라고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작품 '주먹쥐고 치삼'은 전신 3도 화상을 입고도 꿈을 잃지 않는 (주)아이디서포터즈의 책임프로듀서 이동근(29) 씨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씨는 지난해 큰 화재 사고로 얼굴과 온몸이 새까맣게 타는 사고를 당했다. 작품에서는 화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 '문치삼'이 목소리조차 망가져버린 최악의 상황 속에서 뮤지컬 배우의 꿈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공연은 내년 2월1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새우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그 전에 22일부터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이 내년 1월까지 진행된다. 펀딩 목표금액은 5500만원이다. '네이버 해피빈', 'SBS나도펀' 등에서 진행되는 펀딩은 금액에 따라 공연티켓과 폐 호스를 이용한 가방 등을 제공한다. 공연의 일부 수익금은 소방관 처우개선과 소아 화상환자들의 치료비로 기부된다.
연극 '파란나라'는 파시즘을 실험하는 한 교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 배우들이 일선 학교에서 연극 교사를 하면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 사실감을 높였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입시에만 매달려있는 통제 불가능한 교실이 배경이다. 학생들에게 무시 받던 한 기간제 교사가 게임을 제안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과연 파시즘은 완전히 끝난 체제일까?'에 대한 도발적 질문에서 시작한 파시즘 실험 게임이다. 이때부터 학생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차별하지 않는 파란나라를 만들기 위한 '파란혁명'에 나서고, 그 광풍은 학교 전체로 퍼져나간다.
극을 쓰고 연출한 김수정(33)은 '사람들은 왜 대부분 집단 내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집단의 규율 아래 통제를 받고 싶어 하는가'에 주목한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2016년 현재를 살고 있는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집단주의를 경험해가는지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 큐벌리 고등학교에서 홀로코스트와 관련해 진행했던 실험인 '제3의 물결'을 바탕으로 했다. 같은 소재를 다룬 데니스 간젤(43) 감독의 독일 영화 '디 벨레(2008)'와 비교해서 봐도 좋을 듯하다. 오는 27일까지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