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도 싫고 드라마 주인공도 싫어…난 소소소소한 인생, 짠내 나는 현실에 묻혀 살래
[아시아경제 부애리 기자]"보통이야"라는 말은 그동안 칭찬과는 거리가 영 멀었다. 평범하다는 것은 매력적인 것과는 상반되는 뜻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가치는 역전된다. 요즘 2030세대들은 '소소한 보통의 존재'의 매력에 빠졌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는 2017년 키워드로 '노멀 크러시'라는 용어를 뽑았다. Normal(보통의)+Crush(반하다) 평범한 존재에 반했다는 의미다.
#너도_나처럼_짠내나는구나
재벌 2세와의 연애가 담긴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제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대신 그 자리에 노량진 공무원 학원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tvN 혼술남녀', 대학가 셰어하우스를 다룬 'jtbc 청춘시대'가 들어섰다. 모두 '짠내'나는 현실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아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 65만명 시대(10월 통계청 기준), 그 중 40%인 26만명이 공무원준비생(공시족)이다. 혼술(혼자 술마시기)로 인생의 씁쓸함을 달래는 '혼술남녀'의 주인공들은 청춘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노량진에서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이은정(26)씨는 "평범하게 먹고 사는 것도 힘든 세상에서 화려하게 꾸민 주인공들이 나오는 콘텐츠들은 괜히 잘 안보게 된다"며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현실적이고 있을 법한 것 공감이 간다. 짠내나고 좋다"고 말했다.
올 봄, 벚꽃만 피면 음원차트를 휩쓸던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도 10cm의 '봄이 좋냐'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너의 달콤한 남친은 사실 PC방을 더 가고 싶어하지.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니네도 떨어져라'라는 가사는 '삼포세대' 많은 솔로들의 공감을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평범하고_편안한 게_최고
요즘 2030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소는 화려한 네온사인도, 대형 프랜차이즈도 아니다. 2016년 20대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핫했던 장소는 서울 익선동, 신림동 샤로수길, 망원동, 성수동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평범한 옛 동네의 모습을 간직한 골목길이라는 것이다.
이 골목들에서 볼 수 있는 소소한 동네 책방마저 핫플레이스가 됐다. 주인 취향대로 고른 책을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로 느낀다. 술집 대신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테이블 몇 개 없는 식당을 찾아 골목길을 헤매는 것도 편안함과 소박함이 그리워서다.
사회초년생 박주현(31)씨는 "대학 때는 화려하고 시끄러운 곳을 좋아했지만 요즘은 조용하고 평온해지는 곳을 찾게된다. 사회생활에서도 충분히 복잡해서 그런 것 같다"며 "인스타그램에서도 골목길 탐방 게시물이 자주 눈에 띄어서 오히려 이런 곳을 잘 아는 것이 유행을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웃었다.
#성공담보다_경험담
화려한 스펙을 소유한 멘토의 성공 스토리보단 나와 비슷한 보통의 사람들이 겪은 경험담이 더욱 공감을 얻고 인기를 끈다.
요즘 유명한 취업준비 온라인커뮤니티들에는 저마다 '취업 후기','시험 후기'를 남기는 게시판이 있다. 후기에는 저마다 글을 보고 위로를 얻었다는 댓글이 수십개씩 달린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사소한 인터뷰'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각자 자신만의 법이 있다"는 컨셉으로 150여명의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인기를 끌고 있다. '나의 솔직한 상하이 언니' 운영자 릴리는 자신이 직접 겪은 해외취업 경험담을 전달해 취업준비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청춘들은 이런 보통사람들이 직접 겪은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삶을 위로받는다.
이에 대해 대학내일 20대 연구소는 "20대는 가르치려 드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지금 20대는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으며 충분히 힘들다. 고통을 껴안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