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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야구는 인생의 축소판…필름은 계속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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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노래하는 '내츄럴'·'19번째 남자'…MLB 실화 다룬 '61'·'42'
충무로는 '퍼펙트게임'·'감사용' 등...안이한 접근에 깊이 결여

[이종길의 영화읽기]야구는 인생의 축소판…필름은 계속 돌아간다 영화 '내츄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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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지난 3일 미국프로야구 시카고 컵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한·미·일 프로야구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모두 꺼졌다. 동면의 시간. 잠시 경쟁을 잊고 내일을 기약한다. '팀'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쏘아 올릴 희망이다. 다시 우열을 가리겠지만 본질적인 가치는 이들이 쓰는 드라마와 동반자적 발전이다. 경기장 밖 사회와 다르지 않기에 야구에서 인생을 배운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카메라는 축소된 세계를 자주 조명한다. 특히 할리우드는 장르가 세분화된 1980년대부터 다양한 작품을 쏟아냈다. 베리 레빈슨 감독(74)의 '내츄럴(1984년)'이 대표적이다. 불운한 천재의 뒤늦은 성공 이야기의 표본이다. 총에 맞아 그라운드를 떠난 로이 홉스(로버트 레드포드)가 뒤늦게 최하위 구단에 입단해 역전 드라마를 쓴다. 우중간 조명을 때리는 타구 등 낯간지러운 연출이 더러 있지만 인생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승리를 명확히 새겨 감동을 전한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얼굴에서 당시 미국 전역을 휩쓴 보수화의 분위기도 전해진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야구는 인생의 축소판…필름은 계속 돌아간다 영화 '19번째 남자' 스틸 컷

론 쉘톤 감독(71)의 '19번째 남자(1988년)'는 코미디지만 내츄럴보다 사실적인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마이너리그를 희망고문의 장소로 묘사한다. 또 팔방미인보다 특별한 재능을 선호하는 메이저리그 세계를 실감나게 그린다. 신인 투수 에비(팀 로빈슨)는 시속 152km의 강속구를 던지지만 제구가 엉망이다. "저런 애가 무슨 선수야"라는 말까지 듣지만 노련한 포수 크래쉬(케빈 코스트너)를 만나 메이저리그에 입성한다. 크래쉬는 마이너리그에서 홈런 기록을 세우지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결국 방출당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쉘톤 감독은 이 선택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내 1989년 아카데미시상식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한동안 19번째 남자에 비견할 야구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꼴찌에게 희망을 주는 전형적인 틀을 깨지 못했다. 구조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최대 장점인 각본 없는 드라마가 시나리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자주 휘발됐다. 승리 방정식마저 반복돼 관객을 사로잡지 못했다. 풋볼을 다룬 올리버 스톤 감독(70)의 '애니 기븐 선데이(1999년)'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승리와 돈밖에 모르는 구단, 욕설이 난무하는 훈련, 스타 선수들의 일탈 등 프로스포츠의 추악한 이면을 다뤘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야구는 인생의 축소판…필름은 계속 돌아간다 영화 '61' 스틸 컷


빌리 크리스탈 감독(68)의 '61(2001년)'은 이런 접근에 발맞춰 나온 사실상 첫 야구영화다. 미키 맨틀과 로저 매리스가 함께 이끈 뉴욕 양키스의 1961년을 조명한다. 매리스는 그해 홈런 예순한 개를 쳐 베이브 루스가 1927년 세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루스에 도전한다는 이유만으로 숱한 비난에 시달렸다. 홈구장에서 홈런을 날려도 관중에게 야유를 받을 정도였다. 크리스탈 감독은 그를 외로운 늑대처럼 묘사한다. 맨틀 또한 영웅이 아닌 불안 증세를 보이는 스타로 그린다. 상반된 성격의 두 선수가 야구장 안팎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데 중점을 둔다.


기자들의 대화 등으로 당시 비난 여론을 부추긴 언론에 일침을 놓기도 한다. "역시 매리스는 루스에게 안 되는군." "왜 홈런을 못 쳤을까?" "그거야 부담이 컸기 때문이겠지." "너희들, 야구해 본 적은 있냐? 선수들의 심정도 모르면서." 차별과 편견에 대한 서술은 12년 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다룬 브라이언 헬겔랜드 감독(55)의 '42(2013년)'보다 더 세련되고 직설적이다. 매리스가 백인이라서 더 놀랍기도 하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야구는 인생의 축소판…필름은 계속 돌아간다 영화 '머니볼' 스틸 컷


베넷 밀러 감독(50)이 2011년 내놓은 '머니볼'도 애니 기븐 선데이에서 파생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빌리 빈 단장(54)의 경영 철학을 다루는데, 시나리오 작가 애론 소킨(55)이 원작과 달리 코드를 단순화해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이한다.


카메라를 관중석으로 돌린 영화도 있다. 특히 바비 패럴리 감독(58)의 '날 미치게 하는 남자(2005년)'는 영국 소설 '피버 피치'의 무대를 절묘하게 미국으로 옮겨놓았다. 주인공은 원작에서 영국프로축구 아스널, 영화에서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혈 팬이다. 모두 "직장과 애인을 바꿀 수 있어도 응원하는 팀은 바꿀 수 없다"고 한다. 원작의 배경은 1970년~1980년대. 아스널이 부진한 성적과 '뻥 축구'로 혹평을 받던 시기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야구는 인생의 축소판…필름은 계속 돌아간다 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 스틸 컷


영화 속 보스턴도 비슷한 처지다. '밤비노의 저주'가 1918년 우승 이후 86년간 이어졌다. 승승장구하던 라이벌 뉴욕 양키스와 크게 대조됐다. 그런데 혼비는 '사슬에 묶인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팬들의 성숙한 자세를 요구한다. 패럴리 감독도 다르지 않다. 린지 믹스(드류 베리모어)는 팬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식사하는 선수들을 보며 말한다. "야구는 야구고, 일상은 일상이지. 승부에서 졌다고 죽은 듯이 있어야 하는 건 아냐."


충무로도 야구를 자주 다룬다. 그러나 저마다 다른 주제를 부각시킨다. 김현석 감독(44)의 'YMCA 야구단(2002년)'과 '스카우트(2007년)'가 대표적이다. 각각 항일운동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리는데 등장인물들이 야구장만 오면 유독 희화화된다. 야구에 대한 깊이는 물론 시대정신도 기대하기 어렵다. 박희곤 감독(47)의 '퍼펙트게임(2011년)'은 온전히 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에 무게를 둔다. 그런데 내용이 '공포의 외인구단' 속 마동탁과 오해성의 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두 실존인물의 삶에 깊이 있게 다가가지 못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야구는 인생의 축소판…필름은 계속 돌아간다 영화 '퍼펙트게임' 스틸 컷


특히 최동원(조승우)에 대한 묘사가 아쉽다. 당시 지나친 혹사로 기력이 쇠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선동열에 대해서도 평균자책점, 승수 등에 집착했던 과정 등을 생략했다. 김종현 감독(46)의 '슈퍼스타 감사용(2004년)'은 한국판 내츄럴이다. 꼴찌도 꿈에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삼미 슈퍼스타즈는 실제와 다르게 묘사된다. 당시 선수가 어리둥절해할 정도다. "내 기억에 없는 얘기들만 나와. 그리고 내가 저렇게 못 생겼어?"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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