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 피해자?…동정론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대한항공에서 출연한 돈이고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요청을 받았다."
지난 10월4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전경련 재단에 출연금을 냈냐는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당시에는 한진해운 사태가 정점을 찍던 상황이었고, 조양호 회장은 의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한진해운 사태에 대한 '무한 책임'을 요구받는 한편 전경련 재단 논란의 덤터기까지 썼다.
조양호 회장을 향하던 비난의 시선은 그러나 최근 달라졌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입김으로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경질되고 부친의 유업으로 떠맡은 한진해운이 끝내 법정관리로 난파하는 등 정권 실세의 희생양이 됐다는 동정론이 나오면서다. 당시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양호 회장의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사퇴는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4월29일 국무총리 주재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던 조양호 회장은 불과 나흘뒤인 5월3일 돌연 사퇴를 발표한다.
당시 평창조직위는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하루 전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만나 사의를 밝혔다"고 설명했지만 조양호 회장은 최순실 측근에 연루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종덕 전 장관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나간 조찬 자리에서 '이만 물러나주셔야겠다'는 사퇴 통보를 들었고 하루만에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도 뒷말이 많았다. 올 초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나란히 자율협약에 들어갈 때만 해도 생존 가능성이 큰 곳은 한진해운으로 평가됐다. 때문에 회생 전제조건인 얼라이언스 가입에 성공했고 용선료 협상도 마무리 중이었던 한진해운에 대한 채권단의 법정관리 결정은 각종 의혹을 낳았다.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사재 400억원을 내놓은 조양호 회장에 대한 추가 책임론이 이어지면서 정부가 이미 한진해운에 대한 법정관리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시각이다.
결국 조 회장이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고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가게 된 배경에 최순실씨가 있었던 것으로 속속 드러나면서 조양호 회장에 대한 여론도 달라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은 이미 어려워진 한진해운을 떠맡아 2년 동안 1조원 이상을 쏟아부었음에도, 경영권을 포기하고도 정권으로부터 사재출연 압박을 받았다"면서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이지만 조 회장은 특히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의 피해자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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