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관계자 "거국내각 제안은 대통령 탈당하라는 뜻"
與도 사실상 대통령 압박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거국중립내각 수용 여부를 고민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탈당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야가 요구하는 거국내각을 수용할 경우 박 대통령은 사실상 국정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밖에 없어 자연스레 탈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이르면 1일 청와대 비서실장 등 후속인사를 발표하고 개각에 대해서는 당분간 계속 고민할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 탈당에 대한 관심은 여권의 압력이 심상찮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30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청와대에 촉구하기로 했는데, 거국내각에 대통령의 탈당 요구가 포함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거국내각의 전례라고 할 수 있는 현승종 내각이 1992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탈당 이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1일 "당이 청와대에 거국내각 촉구를 결정했다는 것은 탈당 시그널을 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여당과 대통령의 권위를 감안해 탈당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은 것일 뿐, 사실상 권유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소위 친박(친박근혜)계 지도부가 대통령의 탈당을 감안하지 않고 거국내각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는 한 내년 대선도 어렵다는 게 여당이 갖고 있는 인식"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 탈당은 매 정권 말기마다 되풀이돼왔다. 1987년 개헌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전직 대통령이 임기 만료 전 탈당 수순을 밟았다. 다만 박 대통령의 경우 차기 대선까지 1년 이상 남았다는 점에서 다소 이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야당 뿐 아니라 여당 지도부까지 거국내각을 촉구하면서 진의 파악에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정치권이 제기하는 거국내각이 어떤 형태인지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형식보다는 취지를 살리는 게 중요한데, 정치권이 얘기하는 거국내각은 아직 정리가 안된 것 같다"며 평가절하했다. '여당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의도'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좀 더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대통령의 탈당을 막기 위해 책임총리로 무게를 둘 수 있다는 전망을 제기하고 있다. 책임총리는 헌법상 국무총리의 권한을 '정상화'하는 것이지만 대통령의 개입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
헌법 86조 2항에 따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돼 있다. 책임총리로 국무총리의 권한이 강화되더라도 대통령의 명을 받아야 하는 만큼 '식물대통령'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당은 지난 주 책임총리를 언급하면서 여당 중심으로 총리를 뽑고, 그 총리가 내각 구성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다만 여당 내에서도 박 대통령 탈당에 대해 다소 빠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황영철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동반책임을 져야하는 입장에서 (탈당이) 옳은 요구인가. 그것은 대통령이 결정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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