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비선실세 최순실(60·개명 후 최서원)씨의 석연찮은 입국 경위 관련 ‘자진입국’ 셈법에 관심이 간다.
국정농단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31일 오후 최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고 있다. 전날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지 31시간여만이다.
최씨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실소유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유출·누설 상대방으로 지목되고 있는 인물이다. 횡령·배임, 탈세,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10여개 안팎 혐의가 거론되는 가운데 검찰은 우선 두 재단 설립·운영을 둘러싼 의혹부터 차례로 규명해 나갈 방침이다.
일각에선 검찰이 조사과정에서 범죄혐의가 입증되는 대로 긴급체포 내지 체포영장 집행을 통해 최씨 신병확보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리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법원 영장 발부가 가능한 정도로 직접적인 최씨의 형사책임·범죄사실 소명이 어려울 수 있는 만큼 긴급체포 쪽에 무게가 실린다.
사실상 두 달 가까이 국외 도피에 가까운 행각을 보여 온 데다, 재단 관계자에 대한 청와대 측의 증거인멸·회유 정황 등이 불거진 만큼 최씨가 의혹 전반을 둘러싼 핵심 관계자와 접촉해 말을 맞췄을 가능성 때문이다. 일단 체포에 나서면 48시간 내 구속여부를 정해 영장을 청구하든, 최씨를 석방하든 해야하므로 체포는 곧 구속영장 청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최씨 측은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검찰 소환에 응할 목적으로 ‘자진입국’했고, 검찰 수사에 적극 순응할 방침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언론 등은 최씨 입국 과정에서 법무·검찰 협의 아래 수사관 등이 동행했다는 의혹 등을 제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특별수사본부 구성, 최씨 최측근으로 알려진 고영태(40)씨 입국 및 자진출두, 박 대통령의 청와대 참모진 일괄 사퇴 지시, 검찰의 청와대 간접 압수수색 등 고발장 접수 이래 20여일 가까이 대면조사 없이 흘러가던 검찰 수사가 돌연 급물살을 타는 시점이어서 더 공교롭다.
특수본 관계자는 “(검찰 포함)공적인 기관에서 나간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최씨가 런던발 비행기에 탑승한 직후까지도 국내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이 경우 역시 검찰이 최씨 소재를 놓쳤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어서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최씨 측은 주요 형사 피의자 조사마다 재현되는 건강 이상론도 제시했다. 지난 28일 처음 검찰 소환에 응할 의사를 공개한 최씨 측은 당시 심장 등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날은 ‘공황장애’가 추가됐다. 최씨 변호인은 “신경안정제 복용 중이라 약을 소지 안 해서 밖에서 약을 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검찰청사에 나온 최씨는 모자, 스카프 등으로 얼굴을 가리다시피해 지근거리가 아니면 안색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한편 최씨를 대하는 국민 여론에 비춰 신변보호를 위해서라도 체포 등에 의한 수용이 안전할 수 있다. 변호인도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 지 아무도 예측을 못한다”며 우려한 바 있다. 이날 검찰에 출석한 최씨를 맞은 시민단체는 “최순실 구속, 박근혜 하야”를 연호하며 성난 민심을 표출했고, 최씨는 출석현장에 운집한 300여 인파에 이리저리 치이며 쓰러지다시피 청사로 들어갔다. 매무새가 흐트러진 것은 물론 신발이 벗겨지기도 했다.
검찰 압수수색과 언론 취재 등으로 노출된 국내 주거지·거처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전날 입국한 최씨는 신원불상 일행을 대동한 채 입국장을 빠져나간 뒤 서울 시내 모 호텔에 머물렀다고 한다. 검찰은 조사 도중 극단적인 선택의 가능성 등 피의자 심리상태가 불안정하거나 신변이 우려될 경우 긴급체포 제도를 활용해 온 바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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