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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4차 산업혁명,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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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4차 산업혁명,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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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나 로봇, 그리고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이 결합된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사람들은 미래에 펼쳐질 세상에 대해 한편으로는 기대감을,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안고 주시하고 있다. 두려움의 근원에는 인간을 대체할지 모르는 '사물'이 있다. 사물은 지극히 논리적이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주어진 작업을 정해진 시간에 불평 없이 해낸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20억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추정했다. 20억개면 지구상 인류의 일자리 중 25%가 소멸한다는 계산이 된다. 이러니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신세계보다 자기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하다.

인간과 경쟁하는 차가운 '사물'에 대한 공포는 인류 역사상 처음은 아니다. 러다이트 운동이 그것이다. '러디'라는 지도자 이름에서 유래한 러다이트 운동은 노동자에 의한 기계파괴 운동이었다. 기계에 의해 실업이 증가한다고 생각해 분노한 노동자들은 공장 내 기계를 폭력적으로 파괴한다.


1811년에서 1817년까지 영국 중북부의 직물공업지대에서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은 단순히 기계 몇 대 부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생존과 목숨을 건 저항이기도 했다. 기계 파괴와 공장 건축물에 파괴에 대한 최초의 법률은 1769년 영국에서 제정됐다. 이 법률은 기계 파괴를 심각한 사회적 범죄로 규정, 해당자는 사형에 처했다.

1813년 1월13일 요크에서 3명에게 처음으로 사형선고가 내려졌고, 사흘 뒤에는 15명의 노동자가 처형됐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기물손괴죄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런 기준에 비춰 볼 때 영국의 처벌이 얼마나 가혹한지 알 수 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러다이트를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인식, 미국 독립전쟁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찬양하기도 했다. "바다 건너 자유로운 젊은이들은 자유를 싸게 피로 샀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자유롭게 살 것인가 아니면 투쟁 속에서 죽을 것인가. 그리고 러드 이외의 모든 왕을 무너뜨리자"


러다이트 운동 후 20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운동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본주의는 수공업을 파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무직 노동자와 같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냈다. 심지어 사회주의 창시자인 마르크스조차 "물질적 생산수단이 아닌 사회적인 착취형태를 공격해야 한다"며 러다이트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는 것은 그만큼 '사물'의 위협에 대한 본능적 공포가 크기 때문이다. 23년 만에 독일로 돌아온 아디다스 공장, 스피드 팩토리는 100% 로봇 자동화 공정을 갖추고 있다. 상주 인력은 10여명뿐이다. 연간 50만 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하는 이 공장이 개발도상국에 있다면 600명의 노동자가 일했을 것이다.


아마존은 2012년 키바 시스템을 적용한 뒤 2년 동안 약 9억달러의 인건비를 절감했고, 작업시간이 하루 평균 2시간 단축되면서 생산성도 크게 향상됐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경쟁에 휘말려 있는 기업들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사물'을 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IBM의 인공지능인 왓슨의 암판독 정확도는 96%에 이른다. '인간' 의사의 오진율이 20%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왓슨은 인간보다 더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가까운 미래에는 미크론 수준의 정교한 수술도 로봇이 인간보다 더 잘할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 '피조물'에 의해 부정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 나온다. 이런 질문은 단지 생산성이 얼마나 향상되고, 새로운 직업이 얼마나 창출될 것인가 등의 저차원의 질문과 다르다. '인간이 만든 창조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점에서 4차 산업혁명은 지극히 철학적이다. 그리고 그 답은 4차 산업혁명의 본질 속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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