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실패로 딴 노벨상"…삼성의 실패학 개론
-"실패 용납하는 분위기도 중요, 기초과학연구 적극 지원"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원다라 기자]'투명한 콜라, 연기 없는 담배, 보라색 케첩, 성인용 간편식….'
미국의 로버트 맥메스는 이른바 '실패의 표본'으로 인식되던 제품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었다. 1960년대부터 10만점 이상의 기발한 제품을 만들어 '신제품 작업소'라는 이름의 공간에 전시했다. 제품 개발자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기억이 될 수 있는 그 제품들은 훗날 경영학의 살아 있는 교과서로 변신했다.
2000년대 이후 실패는 숨겨야 할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성공으로 도약하기 위한 동력이라는 '벤처 정신'이 재평가를 받으면서 '실패 박물관'이 기업가들과 경제·경영학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재탄생했다.
수십만원에 달하는 1인당 관람료를 받으며 경영학의 교훈을 전하는 이 공간에 대한 사연이 '삼성맨'을 뽑는 문제로 출제됐다. 16일 삼성그룹 대졸(3급) 신입사원 직무적성검사(GSAT) 논리 영역의 지문으로 출제된 '실패학'과 '실패 박물관'에 대한 내용은 업계의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삼성 계열사 입사를 희망하는 취업준비생의 관심사인 GSAT가 업계 관심을 받은 이유는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를 둘러싼 삼성의 현실 인식을 반영하는 결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삼성은 그동안 GSAT를 통해 중국사, 자율주행차 등 삼성그룹의 고민을 담은 지문을 출제했다.
실패학의 지문 등장은 그런 점에서 시사점을 남겼다. 국내외의 일부 갤럭시노트7 제품에서 소손(燒損) 현상이 발견되면서, 삼성전자는 단종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번 실패는 삼성전자의 단기 실적은 물론 중장기 실적 전망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지만 삼성은 신입사원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실패학에 대한 지문을 출제했다. 실패도 성장 동력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응시생들에게도 전달됐다.
단대부고 고사장에서 만난 GSAT 응시자 이모(28)씨는 "GSAT는 삼성 관련 문제가 출제되는 편인만큼 신문 기사 등 삼성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준비해왔다"며 "(실패학 지문의) 내부 사정은 잘 알 수 없지만 해야 삼성의 고민이 담긴 문제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한국영업총괄 직군 GSAT에 응시한 고모(28)씨도 "실패를 자산으로 삼는 실패학 지문으로 갤럭시 노트7의 실패를 자산으로 삼자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이 실패를 교훈으로 삼으려는 태도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12년 신년사를 통해 "실패는 삼성인의 특권"이라며 의미심장한 화두를 전했다.
이 회장은 "과거의 실패를 거듭하지 않도록 실패를 완전히 분석한 뒤 자산화해야 한다"며 "실패 경험을 좌우상하로 공유하면 굉장한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산으로 삼고자 정면돌파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이 실패를 좌절의 역사로 숨기기보다 재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한 사례는 적지 않다. 최근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와 맞물려 2009년 도요타의 급발진 사고에 따른 대처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시 도요타는 늑장대처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의 선제적인 대응과는 차이가 있다. 다만 도요타는 품질 관리 문제로 실패를 경험한 뒤 이를 거울삼아 품질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위기를 탈출한 경험이 있다.
삼성전자도 도요타가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을 되짚어 나가다 보면 갤럭시노트7을 둘러싼 위기 국면을 타개할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삼성전자도 이러한 외부의 시선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배출된 일본처럼 실패를 용납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기초 과학 연구를 위해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그룹은 GSAT 합격자를 대상으로 임원·직무역량·창의성 면접 등을 거쳐 11~12월께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계획이다. 채용규모는 지난해 하반기와 비슷한 1만4000여명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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