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가계부채 정책이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전환하는 등 질적 개선에 더해 간접적 총량 관리로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주택금융공사가 보금자리론 대출 대상을 오는 19일부터 대폭 축소시킨 것이 상징적이다. 당초 올해 보금자리론 한도를 10조원으로 책정했었는데 주택시장 활황으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자 주택가격 9억원에서 3억원 이하로, 대출한도는 5억원에서 1억원이하로, 제한을 두지 않던 연소득 기준을 부부합산 6000만원 이하로 대폭 강화했다.
이미 10조원 한도에 육박했으며 최근 보금자리론 수요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쪽문만 남기고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이같은 조치를 취하더라도 올해 보금자리론 대출은 16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주택금융공사가 보금자리론을 공급하기 위한 자금 조달에 한계가 있고 수요가 워낙 많아져서 서민들에게 우선 기회를 줄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번 조치로 보금자리론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 대출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권 역시 대출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면서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기존 평가를 재차 확인했다. 분할상환과 고정금리 중심의 대출 관행이 정착돼 가계부채 질적 구조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으며, 연체율 등을 봤을 때 금융기관의 손실 흡수 능력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총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며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직접적 규제는 아직 필요치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직접적 규제를 하지 않되 금융사들이 자율적으로 가계부채 총량 증가를 관리하도록 했다.
금융위는 가계부채 대책을 당초 예정보다 앞당겨 실행하고 있다. 당장 이번달부터 가계부채의 뇌관인 집단대출의 보증기관 보증비율을 100%에서 90%로 낮췄고, 대출자의 소득 증빙 서류를 의무적으로 확인토록 했다. DTI를 적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사한 효과를 내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집단대출에 대해 DTI 60% 기준을 정해 충족치 못하면 별도 부동산 임대 소득 등 상환능력 심사를 거쳐 대출 여부와 한도를 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이 자율적으로 설정한 연말 가계대출 목표치 상황을 점검하고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금융사는 건전성 및 리스크 관리 차원의 금감원 특별점검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위적 총량 관리에는 부정적인 입장도 밝혔지만, 금융사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총량 관리를 주문한 것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집단대출에 대한 소득 확인을 의무화하라고 한 것이나,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빠르면 특별점검을 하겠다고 한 것은 은행들이 알아서 소득 심사를 하고 총량도 늘지 않도록 제한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해 대놓고 금융 규제를 통한 총량 관리를 하지는 않지만 금융당국도 지나치게 총량이 부풀어오르는 것에 대한 우려는 내심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에도 은행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은 지난해 같은 달과 비슷한 6조1000억원 증가했다. 2010~2014년 같은달 평균 1조6000억원에 비해 4배 가까이 많다.
지난 8월 가계부채 대책은 아파트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 조치 등이 없다는 점에서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뒤늦게 국토교통부가 일부 지역의 투기과열지구 지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권 등 아파트 분양시장이 과열 현상을 보이는 곳에 대한 맞춤형 대책인 셈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대책에 앞서 필요성을 강조했던 전매 제한 강화가 부분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 이 역시 집단대출 증가세를 억누르는 총량 관리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택시장이 계속 활황을 보이면서 보금자리론 뿐 아니라 은행들이 설정했던 올해 대출 목표액도 대부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면서 “직접적으로 금융 규제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변함 없지만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가계부채로 인한 시스템 리스크를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미연에 방지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