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노트7 발화 사고 후 성급하게 조사 결과 공개
'배터리'·'외부충격' 발표 후에도 발화 잇따라
전문가들 발화 원인에 대해 의견 분분…조사 쉽지 않아
[아시아경제 강희종 기자]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한개 가격이 웬만한 냉장고 가격에 버금가는 것은 그만큼 내부에 복잡한 기술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들은 앞 다투어 스마트폰에 적용된다. 그러다보니 고장도 쉽게 난다. 냉장고를 한번 사면 10년을 쓰지만 비슷한 가격의 스마트폰은 2년을 채우기 어렵다.
홍채인식, 스타일러스펜, 방수방진 등 스마트폰의 '완성체'로 평가받았던 갤럭시노트7에서 발화 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전자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삼성전자 휴대폰에서 발화 사고가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간혹 이러한 사고가 있었으며 그때마다 삼성전자는 제품의 결함보다는 소비자 과실 혹은 '원인 미상'으로 결론지었다.
삼성전자는 이번에도 과거와 같은 프로세스를 밟으려 했을 것이다. 제품 출시 초기에 흔히 나타나는 불량 문제로 치부하고 검수를 더 철저히 하는 등 품질 관리를 잘하면 해결될 일로 여겼을지 모른다. 사고가 한 두건에 그쳤다면 이같은 전략은 먹혔을 것이고 갤럭시노트7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계속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지난 8월 19일 갤럭시노트7이 출시된 후 발화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삼성전자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소비자 안전'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미국에서 갤럭시노트7 발화가 연쇄적으로 보고되자 삼성은 더 이상 극소수의 문제로 덮어버릴 수 없게 됐다. 결국 삼성전자는 8월말 제품 공급을 중단하고 9월2일 자체적인 리콜을 발표했다.
◆1차 리콜, 제품공급 중단 3일만에 "배터리가 원인" 발표
당시 삼성전자는 발화의 원인을 '배터리'로 지목했다.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은 9월2일 리콜을 발표하면서 "배터리 셀 제조 공정상 미세한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품 공급 중단을 발표한 지 3일만에 조사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없는 배터리로 교체한 새로운 ‘갤럭시노트7’을 9월19부터 공급하기 시작했다. 기존 제품을 구매했던 소비자들은 새 갤럭시노트7은 안전한 제품으로 여겼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현상이 나왔다. 새 갤럭시노트7에도 발화가 나타난 것이다. 최고 보고는 지난 10월 1일이었다. 한 네티즌이 불에 탄 새 갤럭시노트7의 사진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고, 이내 화제가 됐다. 삼성전자는 이 제품을 수거해 사설 검증기관인 SGS코리아에 검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외부 충격에 의한 발화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이 났다. 삼성전자는 국가 기관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에도 검사를 의뢰해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연구 결과가 공개되면서 국내 언론과 소비자들은 새 갤럭시노트7은 안전한 것으로 여겼다.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근데 이번엔 해외에서 갤럭시노트7의 발화가 보고됐다. 그것도 비행기 안에서였다. 발화는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미국에서만 일주일새 5건이 보고됐다. 소비자들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추가로 발화된 제품이 갤럭시노트7이 맞다면 발화의 원인이 ‘배터리’나 ‘외부충격’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 갤럭시노트7 발화하자 하루만에 "외부충격 가능성" 공개
결국 삼성전자는 지난 11일 새 갤럭시노트7의 판매중단과 단종을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일부터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와 함께 갤럭시노트7의 발화원인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차 리콜 당시 며칠만에 배터리를 발화원인으로 지목했던 것과는 대조된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국내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불과 하루만에 외부충격이나 눌림을 발화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갤럭시노트7의 발화원인이 단순히 배터리 제조 공정상의 문제나 외부 충격에 의한 것만은 아닌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현존하는 가장 복잡한 전자 기기인 스마트폰에서 발화된 원인을 쉽게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삼성전자는 최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기하게도 금새 발화원인을 찾아내 공개했다. 사태 수습에 급급해 발화 원인을 조급하게 진단해 공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지난 1일 발생한 갤럭시노트7 발화 원인을 외부 충격으로 보고 있다. 당시 KTL의 조사 보고서를 보면 "배터리 내부 전극 파단 지점이 후면 케이스의 원형 흔적 위치와 유사해 외부로부터 물리적인 힘이 작용되었을 경우 배터리 내부 발화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KTL 측은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지 외부 충격을 100% 원인으로 명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새 갤럭시노트7 1차 발화 제보자, "외부충격없었다"
SGS코리아와 KTL의 검사는 비파괴검사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SGS는 외관 검사와 X레이 분석, CT 촬영을 통해 분석을 진행했다. KTL 검사는 외관 검사와 CT 촬영만을 통해 진행됐다. 정밀검사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해당 제품에 실제 외부 충격이 있었는지, 외부 충격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에서 발화 위험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KTL측은 "의뢰가 들어온 제품에 대해서만 조사할 뿐 소유자에 대한 조사까지는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제품을 소유했던 이모씨는 본지와 통화에서 "결코 외부 충격을 준 적이 없으며 케이스 후면의 상처는 발화때 배터리에서 발생한 열로 인한 열변형"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발화 원인에 대해서는 한국, 미국 정부와 정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지난 1일 발생한 발화 사고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가 이루어진 만큼 추가 조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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