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사기업으로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외국 선사들의 저가공세에 맞서 경쟁하는데 한계를 느꼈다"
4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산업은행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초래한 대주주의 책임론 지적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한진해운 법정관리와 물류대란 사태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난 9월1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개시 이후 조 회장이 공개 석상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어 "2014년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으로부터 한진해운을 인수한 뒤 2조원의 유동성 공급을 통해 부채비율을 1400%대에서 800%대로 낮췄고, 4개 분기 영업이익을 달성했지만 수십조원의 정부 지원을 받는 외국 선사들과의 치킨게임에 사기업으로서 한계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날 국감장에서 여야의원들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빚어진 물류대란은 현 대주주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공세를 취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16일 산업은행에 법정관리 협박하며 지원 공문을 보낸 사실이 있느냐"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 공문에서 '귀행을 비롯한 모든 채권자가 상당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부, 국민, 채권단을 협박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에 조 회장은 "공문을 보낸 사실은 있지만, 협박성 주장은 아니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조 회장과 함께 출석한 석태수 한진해운 사장은 "회사 자금 사정이 그만큼 절박하니 꼭 좀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는 취지에서 작성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부가 구상중인 현대상선의 한진해운 자산 인수 관련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한진해운의 인적 네트워크, 영업망 등이 현대상선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전문성은 없지만 무형자산을 다른 업체가 공유한다고 해서 다 보존된다고 보진 않는다"면서 "다만 빠른 시일내에 회생시키면 보존 가능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채권단 요구에 사재 400억원을 출연했는데 합당한 수준이라고 보느냐"고 묻자 "경영자로서 책임을 느꼈고, 하선 못 하는 선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기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확하진 않지만 재산의 20% 가량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적 해운사를 살려야 한다는 각오가 있다면 전재산이라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추궁에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상 뭐라고 말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조 회장은 ㈜한진이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 알짜 자산을 모두 매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한진해운이 자금이 급한 상황에서 터미널 등을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아 연관사업을 하는 ㈜한진이 사들인 것"이라며 "제3자 평가에 따라 적정 가격으로 매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이 물류대란 관련 정부의 초동대응이 미흡했던 이유가 한진해운이 화물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라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법정관리를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물류대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해 대비를 하지 못한 점이 있지만, 회사나 채권자 보호를 위한 결정"이었다고 해명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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