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측은 이날 집회에 약 3만명 참여했다고 밝혀
[아시아경제 금보령 기자, 기하영 기자] "우리가 백남기다. 우리가 백남기다."
1일 오후 4시30분쯤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에서 나온 시민들의 외침이다.
추모대회에 모인 시민들은 고(故) 백남기씨의 죽음을 추모하며 시신 부검을 강행하는 정부를 규탄했다.
이날 집회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와 백남기 투쟁본부가 함께 '노동개악·성과퇴출제 폐기 범국민대회'와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를 연이어 열었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약 3만명(경찰추산 7000여명)참여했다고 밝혔다.
추모대회는 평화의 나무합창단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시작됐다. 이어 추모대회 사회자를 맡은 김정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총장은 인사말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마음 아파하고 애통해하고 분노했다"며 "여기에 계신 분들 덕분에 백남기 회장님을 지금까지 지킬 수 있었다. 진심으로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는 인사 올리겠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추모발언을 한 정현찬 가톨릴 농민회 회장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고 백남기 동지야"라고 부르짖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14일 당신이 물대포를 맞을 때 우리가 맞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317일 동안 병상에 누워 사경을 헤맬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우리들이 미안하다"며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서 한 청춘을 바쳤던 그 정신을 살아있는 우리들이 꼭 지키겠다"고 얘기했다.
백씨의 둘째 딸 백민주화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식으로 못해드린 것도 많고 풀어드려야 할 억울함도 많아서 죄송하다"며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백씨는 "물대포로 인한 사망이 분명하다면 왜 부검에 동의하지 않냐는 사람들이 있다. 수술 직후 뇌사상태와 거의 비슷하다던 주치의는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표기했다"며 "사인의 증거가 넘쳐나는데 어느 자식이 아버지의 시신을 또 다시 수술대에 올리고 싶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법보다 위에 있는 것은 생명"이라며 "그 기본정신을 갖추지 못한 무자비한 경찰의 물대포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오늘은 양심 있는 경찰들이 집회 참가자들을 보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대회에 참여한 대학생 박은진(24)씨는 "부검 영장이 발부된 다음 날인 29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추모하러 갔더니 전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지켰다는 걸 알게 됐다"며 "내 몫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에 집회에 왔다"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 때문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국민들도 다 안다"며 "경찰만 혼자 원인을 모르겠다며 부검영장을 신청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경찰을 비판했다.
경찰은 백남기씨에 대한 부검영장을 사망 당일인 지난달 25일 신청했다가 법원이 이를 한 차례 기각하자 27일 재신청했다. 이에 법원은 경찰이 재신청한 부검영장을 지난달 28일 밤 발부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영장 집행계획은 미정이다.
추모발언을 하러 온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예은이 아빠이자 백남기 어르신 아들 유경근이다"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이어 유 집행위원장은 "이 현실에서 하나 둘 슬픔의 눈물만 흘리다 전부 쓰러지면 도대체 어느 누가 추모할 것이고 이 자리에 모일 수 있을까 의문이다"라며 "더이상 희생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이 세상을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고 외쳤다. 이날 추모대회에 모인 시민들은 큰 박수로 그의 외침에 답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 투쟁발언을 한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며 "총궐기는 이미 시작됐다. 우리가 이 사건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집회가 끝난 뒤 5시30쯤부터 종로5가→종로1가→청계천 모전교에 이르는 3.5km 구간을 행진했다. 애초 백남기 투쟁본부가 행진하기로 신고한 종로1가→세종로 사거리→서대문역 사거리→경찰청 구간은 교통 소통에 심각한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경찰이 금지 통고했다.
한편 지난달 30일 서울대 의과대학 재학생 102명은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에 대한 의혹을 밝혀달라는 내용을 담은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학생들은 "직접사인으로 '심폐정지'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은 국가고시 문제에도 출제될 정도로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지적하며 "저희가 소명으로 삼고자 하는 직업적 양심이 침해받은 사안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달라"고 선배들에게 부탁했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기하영 기자 hyki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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