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별로 내진설계 돼 있지만 중구난방
공장들이 지진 충격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파악하기 힘든 실정
지진 대비 훈련을 한 곳 전무한 것은 더 큰 문제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리히터? 진도? 그게 다른 건가요? "공장 담당자들도 헷갈려하는데요" 지진 이후 울산·거제·여수 산업단지 내 대기업들에게 내진 설계 기준을 물어보자 돌아온 대답이다.
잇단 지진에도 자동차·중공업·석유화학 생산시설이 밀집해 있는 이들 지역 산업단지의 위험은 부각되지 않았다. 2~3개 공장만이 잠깐 라인을 멈추는 정도로 끝나 "별다른 피해가 없다"며 안도했다. 그러나 숨은 현실은 다르다. 지진 상식부터 부족하고, 내진설계 기준도 중구난방이다. 지진 대피 훈련을 단 한번이라도 해 본 공장 역시 전무하다.
기업들이 말하는 내진설계 기준은 두 가지로 갈렸다. 지진파로 생긴 절대적인 에너지 규모로 뜻하는 '리히터', 혹은 진앙으로부터 거리에 따라 흔들리는 정도를 말하는 '진도' 중 하나다. 수치도 각사마다 달랐다. 진도 기준인 곳은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6.0), SK이노베이션·에쓰오일(7.0), 효성(8.0~10.0) 정도였다. 리히터가 기준인 곳은 한화케미칼(7.0)과 대우조선해양(6.0), GS칼텍스(6.0), LG화학(6.0) 등 이었다.
제멋대로 기준인 이유는 건축법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건축법 고시에 내진설계 기준은 지진 가속도로 표시 돼 있는데, 지금까지 이것을 대략 리히터나 진도로 역산해 건물을 올릴 때 썼다"고 했다. 이런 일관성 없는 내진 기준으론 설비들이 지진 충격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한 석유화학업체 직원은 "정작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다'는 속보가 떴을 때, 우리 공장은 괜찮은지 선뜻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속한 초동대처에 구멍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지진 대피 훈련을 한번이라도 해 본 공장이 없다는 점이다. 울산지역 공장 한 노조 홈페이지에는 "야간인데다 지진이 심하게 났는데 아무도 대피하라는 말도 없어서 야간조는 흔들리는 작업장 안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러다 공장이 무너지고 인명피해가 나야 정신을 차릴건가"라는 내용의 글이 12일 이후 속속 올라오고 있다.
지진 대피 매뉴얼이 있어도 유명무실 하거나, 아예 매뉴얼조차 없는 곳도 있다. "지진은 우리가 생각했던 천재지변 범주 안에 없었다"는 게 회사들의 공통적인 항변이다.
현재 울산시 내 공장은 2319개(개별등록 기준), 여기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15만 4472명이다. 지진이 나면 이들부터 직접 타격을 받게 되지만, 국가 재난으로 번지게 되는 건 시간 문제다. '거대생산설비 붕괴' '유독물질 누출·폭발' '기름 유출·화재'… 이곳에서 발생할 사고는 원자력발전소 피해 못지 않은 위력을 갖고 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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