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검찰 수사로 민낯을 드러낸 대우조선해양의 단면은 비리 백과사전이다. 자산총계 17조원 규모(올해 상반기 말 기준)인 거대 기업은 산업은행(지분율 49.7%), 금융위원회(8.5%) 등 사실상 정부 소유였지만 주먹구구식 경영에 감시·견제는 없었다.
대우조선은 현재 기업심사위원회 심의대상으로 전락해 이달 29일까지 상장폐지 여부 결정을 앞둔 상태다. 조선업계 불황에 불을 댕기고, 1만2000여명의 임직원 생계도 위협받는 상황이다. 사람도, 기업도 백척간두인 셈이다.
지난 10년간 경영을 책임졌던 최고경영자(CEO) 대표이사들은 모두 구속기소됐다. 2006~2012년 대표를 지낸 남상태 전 사장(66·구속기소)은 임기 동안 측근 뒤를 봐주며 자기 잇속을 챙기는 데 골몰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대학동창, 측근 등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그 대가로 총 20억여원대 뒷돈을 챙긴 혐의 등(배임수재, 업무상횡령)으로 지난 7월 구속기소됐다. 대우조선 해외 지사는 그의 개인금고로 전락했다.
지난해 5월까지 후임 대표를 지낸 고재호 전 사장(61·구속기소)은 거대한 부실 앞에 눈감고, 위험을 외부로 확산시킨 인물로 지목됐다. 그는 재임 중 순자산 기준 총 누적 5조7000억원 규모 회계사기를 지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21조원대 불법 자본조달에 나선 혐의(자본시장법·외부감사법 위반,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배임)로 7월 구속기소됐다.
부풀려진 매출원가, 누락된 손실, 미실현 이익에 대한 부실한 안전판 위에 세운 허울뿐인 실적은 성과급 잔치로 이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막대한 손실을 못 본 체 하며 고 전 사장 재임 중 대우조선 임직원이 챙겨간 성과급은 4900억원대, 임원들 몫만 100억원 가까이 됐다.
‘과거와의 단절’을 강조하던 현 경영진도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대우조선 회계사기가 정성립 대표(66·사장) 체제에 들어서도 지속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대우조선이 자본잠식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고, 채권단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지난해 영업손실 1200억원을 축소·조작한 것으로 보고 김열중 재경본부장(58·부사장)을 불러 조사한 바 있다.
대주주로서 대우조선을 관리·감독했어야 할 산업은행은 한통속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업은행은 2009년부터 부행장 출신을 대우조선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내려보냈지만 '거수기' 역할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김갑중 전 부사장(61·구속기소)의 경우 아예 회계사기 공범으로 몰려 함께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됐다.
검찰 수사는 이제 회계사기·경영비리를 주도한 경영진의 '뒷배'가 누구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우조선 사장 연임로비, 특혜압력 의혹 등에 얽힌 전직 산업은행장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온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은 19일 강만수 전 행장(71)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고 있다. 민유성 전 행장(62)도 조만간 검찰에 출석할 전망이다.
대우조선 및 계열사를 상대로 투자 사기를 펼친 것으로 의심받는 언론인 출신 김모(46)씨는 강 전 행장의 지인으로 지난 13일 구속기소됐다. 강 전 행장은 김씨 업체 외에도, 고교 동문 임우근 회장(68)의 한성기업 등 다수 업체가 특혜를 누리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는다. 이날 검찰에 출석한 강 전 행장은 “공직에 있는 동안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며 본인을 겨냥한 의혹들을 부인했다.
민 전 행장은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62) 등과 함께 남상태 전 사장 '연임 로비' 핵심 인물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58·구속기소)와 얽혀 있다. 검찰은 박 대표가 위기관리 컨설팅 명목으로 유력인사 이름을 앞세워 거액을 챙겨온 정황을 확인했다. 실제 대우조선 매각 불발 등 여론이 악화되자 남 전 사장은 박 대표를 찾았고, 연임 확정 직후 박 대표는 3년간 20억짜리 계약을 따냈다.
의혹의 당사자들은 청와대 등을 배경으로 지목하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강 전 행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남 전 사장을 '슈퍼갑'으로 칭하며 "청와대를 업고 있는 게 남상태, 그걸 자른 사람이 나"라고 주장했다. 강 전 행장에 이어 산업은행장을 맡은 홍기택 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는 "(대우조선해양 지원은)청와대·기재부·금융당국이 결정한 행위로,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주장해 서별관 청문회를 촉발했으나 현재 종적이 묘연하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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