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에 화제의 중심이 된 인물은 단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연휴 중간인 지난 15일(현지시간) 반 사무총장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정세균 국회의장, 여야 3당 원내대표와 만나 "내년 1월 중순 이전 귀국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사실상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해석됐다. 한가롭던 연휴에 미국에서 전해진 반 총장의 이 한마디로 '대선 시계'의 초침에 급가속이 붙은 분위기다. 인터넷 포털과 SNS에서는 반 총장에 대한 지지와 비판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대선 후보' 반 총장에 대한 '검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하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대선 출마를 앞다퉈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뉴욕에 가서 반 총장을 만나고 18일 오전 귀국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공항에서 "정진석 원내대표가 반 총장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했더니 안 하겠다고는 안 하더라"며 "저는 (반 총장이)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앞서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반 총장과의 면담 이후인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임기(12월31일)가 끝나면 빠른 시일 내에 귀국해 본격적인 활동을 할 것이라는 암시를 강하게 받았다"고 올렸다.
'반기문 띄우기'는 누구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열심이다. 특히 반 총장과 같은 충청권 출신인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결심한 대로 하시되 이를 악물고 하셔야 한다"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메시지를 반 총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 5월 불과 6일간의 방한으로 정치권을 흔들어놓았던 반 총장이 이제는 국내의 '대선 무대'에 사실상 등판한 셈이다. 게다가 국내에 있지도 않으면서 누구보다도 뚜렷한 중량감을 과시하고 있다. 반 총장의 대선 출마를 지원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반 총장의 팬클럽 '반딧불이'가 공식 창립대회를 오는 11월 열고 전국 조직 구성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활동에 들어간 상태다.
그러나 반 총장 앞에는 이제 더욱 본격적인 검증 공세가 기다리고 있다. 이미 정치권에서 '견제'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금은 지지도가 많이 나오지만 한번은 국민이 검증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인사청문회도 안 했던 분인데 국가지도자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반 총장이 충청권과 집권 여당 주류의 지원을 받으면 강력한 여권 후보 1순위가 될 수 있을 것이지만 지난 10년 동안 해외에 머물면서 국내 행정 경험이 없다는 점이 취약점이다."
네티즌들의 댓글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게 읽힌다.
"중도 보수 반 총장, 호감이 간다" "반 총장, 당당하게 경선에 참여해서 대선 주자가 돼야 한다"와 같은 지지 발언도 있지만 부정적인 의견들도 많다.
"반기문은 훌륭한 유엔총장도 아니었고 대통령감은 더더욱 아니다." "반기문은 대선 출마 공식 선언하는 순간 허물어질 것이다. 그냥 그 자리에서 깔끔하게 은퇴하면 역사에 그나마 아름답게 남을 거다." "반기문, 왜 블랙홀로 들어오려 하는가."
한편 같은 충청 출신인데다 참여정부 시절 총리로서 반 총장과 내각에서 같이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이해찬 의원이 이르면 이번 주에 더민주당에 복당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그가 얼마나 '반기문 저격수' 역할을 할지도 관심이다. 이 의원은 이미 반 총장에 대해 "깜이 되지 않는다" "외교관은 정치를 못 한다"며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다.
여론조사 1위를 지키고 있는 '대선 주자' 반기문 총장의 앞에는 얼핏 꽃길이 열리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꽃길 앞에 낭떠러지도 설핏 보이는 듯하다.
이명재 편집위원 pro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