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등기이사로서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재계 3세 경영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삼성그룹 창립 79주년, 현대차그룹 71주년 등 국내 상당수 대기업이 창업한 지 70년이 넘으면서 3세 경영체제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일궈낸 창업주, 이를 어깨넘어 배웠던 2세 경영을 넘어 이제는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재계 안팎에서 3세 경영의 활약에 주목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를 다음달 27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임시주총에서 등기이사 선임 안건이 결의되면 이 부회장은 기존 등기이사진과 공동경영 체제를 구축하게 되는 것은 물론 삼성그룹의 본격적인 3세 경영 시대를 열게 된다. 삼성의 오너 일가가 삼성전자의 등기이사가 된 건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 퇴진 이후 8년 만이다.
삼성그룹은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승계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건희 회장에서 이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승계 과정은 다소 짧은 시간에 이뤄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 2003년 경영기획팀 상무, 2010년 삼성전자 부사장(COO, 최고운영책임자), 2010년 사장(COO) 등을 거쳐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5월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맡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물려받았다. 그룹 총수로서 상징적인 직책을 단 것이다. 17개월여 뒤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되면서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적인 측면에서 그룹 총수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이번 등기이사 선임으로 책임경영에도 나서겠다는 것도 공식화했다.
현대차그룹의 3세 경영인은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부회장이다. 1970년생인 정 부회장은 1999년 현대차에 입사해 오랜 시간 후계자 수업을 받아왔다. 2005년엔 기아차 사장에 취임했고, 2009년부터는 현대차 부회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그룹 경영에 나섰다. 부회장만 8년차에 이른 그는 언제 회장직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꾸준히 후계자의 길을 걸어왔다. 올해는 정 부회장에게 어느 해 보다 중요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성장을 거듭해온 현대차가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성장과 생존을 위해서는 새로운 도약이 필수고, 그 과제는 정 부회장의 어깨에 달려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1995년 27세로 신세계백화점 이사로 출발, 11년만인 2006년에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3년 뒤인 2009년엔 총괄대표이사 부회장까지 맡았으며 사실상 경영승계를 이뤘다. 또한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한화, 금호아시아나, 현대중공업 오너 3세들도 경영 전면에 속속 나서고 있다. 정기 인사에서 김승연 한화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은 입사 13년 만인 올해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처럼 재계 3세들이 경영 전면에 하나둘 나서면서 기업의 '3세 경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하지만 아무리 이들이 탄탄하고 착실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너 혈통이라는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때문에 큰 기업을 이끌 역량을 갖추기 위한 보다 진지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그룹을 책임지는 총수는 글로벌시각 만큼이나 투명경영, 인간 존중경영, 사회공헌 경영에 대한 굳건한 철학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무소불위 후계자는 기업을 순식간에 망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어느때보다도 곱씹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많은 3세들의 능력이 출중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일부 후계자들은 능력이 과대 포장돼 있고, 온실의 틀에서 벗어나 있지 못한 측면도 있어 반드시 시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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