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김영란법 시행 앞두고 몸사리기…"오이밭에서 신발끈 고쳐매지 않을 것"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이 오는 28일 시행됨에 따라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그동안 관례적으로 해왔던 식사, 선물이 대폭 제한됨에 따라 어떤 경우가 김영란법에 해당하는 지 등에 대해 '열공(열심히 공부)' 중이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의 유권해석 역시 애매모호하고,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어 당분간 괜한 오해를 살 일은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15일 세종시 주요 부처에 따르면, 공무원들은 최근 김영란법과 관련한 교육을 받은 뒤에도 혼돈스러운 모습이다. 김영란법이 폭넓게 적용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관계라고 하더라도 밥값을 누가 내느냐, 어떤 부탁을 받느냐에 따라 범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 시행 직후에는 소위 '시범케이스'에 걸리지 않도록 각별히 몸을 사리고 있다. 당분간 오이밭에서 신발 고쳐매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A국장은 "교육을 받으면서 '이젠 아무도 못 만나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면서 "친구나 동문 선후배를 만나더라도 직무연관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밥값을 내든 상대방이 내든 위법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 B국장은 "상황에 따라 워낙 다양한 판결이 나올 수 있어 권익위에서도 '가능한 식사를 하거나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식을 답을 해주고 있다"며 "오는 28일 이후에는 외부약속을 하나도 잡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공직사회 일각에서는 과도한 법 적용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법이 될 수 있어 법 자체가 사문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C과장은 "누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면서 "공무원이나 교원, 언론인 등은 혼자 또는 동료와만 밥을 먹거나 매번 각자 계산하는 식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영란법이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D국장은 "동료나 외부인이 한 공무원을 김영란법 위반으로 고발을 하게 되면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데, 유·무죄를 확정할 때까지 1~2년이 걸릴 가능성이 많다"면서 "이 공무원은 그동안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범죄자로 낙인 찍혀 공직생활을 더 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E과장은 "앞으로 세종시에는 김영란법 위반행위만 고발하는 소위 '란파라치'가 극성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어느 공무원도 한우식당이나 한정식, 일식당 등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반적으로 부정청탁이나 뇌물, 향응 등이 줄어들면서 투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먹이사슬로 볼 때 공무원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국회의원 등 정치권의 무리한 청탁도 김영란법을 계기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F국장은 "공무원 대부분은 '단기적으로 혼란스럽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인사나 예산, 정책지원 등 다양한 청탁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김영란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들어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G국장은 "국회의원이나 의원 보좌관들의 지역현안 해결 등 각종 민원도 엄청나게 많은데, 앞으로는 서면질의 등 공식절차를 통할 것을 요구할 생각"이라며 "반복적으로 부정청탁을 하면 서면으로 신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원칙에 따라 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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