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어제 한진해운에 몰빵해 60% 먹고 나왔습니다."
5일 주식시장이 끝나고 한 인터넷 주식 관련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곧 사람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어제 장이 열리자마자 하한가를 맞았고 등락이 있긴 했지만 거의 파란불(하락)이었는데 말도 안된다"는 식이었다. 수시로 한진해운을 모니터링 하던 기자도 궁금했다. 이 말이 과연 사실일까.
확인해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한진해운 주가는 전날 개장 직후 가격제한폭(-29.84%)까지 떨어진 870원을 기록, 동전주 신세가 됐다. 하지만 투기적인 저가매수세가 유입돼 오전 10시10분께 상승반전에 성공했고 이내 급등세를 타더니 한때 17.74% 오른 146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다 주가는 다시 급락했고 결국 13.7% 하락 마감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만약 이날 한진해운 주식을 870원에 매입해 1460원에 팔았다면 수익률은 67.8%에 달한다.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기업에 또 다시 광적인 투기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기존과는 다른 매우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통상 이러한 '폭탄돌리기'식 투기를 즐기는 개인투자자들에 부정적인 시선이었으나 이번엔 안타깝고 심지어 가련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선박의 절반 이상이 전세계 곳곳에 비정상적으로 묶여있고, 국제소송이 빗발치며 심지어 채권단마저 경영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추가지원을 포기한 기업의 주식을 사는 사람들. 그 행동의 '비이성적임'을 탓하는 마음보다 누가 이들을 '비인간(흔히 개미라 무시된다는 의미에서)'으로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구심과 분노가 앞섰다.
개인투자자들이 '설마 한진해운을 망하게 하겠어'라며 휴지조각이 될지도 모르는 주식에 전재산을 거는 것은 정부가 그동안 부실 대기업들에 수십조원의 혈세를 쏟아붓고 시장을 왜곡해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인식을 심어준데 대한 폐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진그룹의 책임론만을 부각시키며 이 같은 비난을 피하려던 정부는 6일 오전 여당과 긴급 회의를 갖고 한진해운에 장기 저금리자금 약 1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입장을 다시 바꿨다. 이에 개장 1시간도 채 안돼 한진해운 주가는 20% 넘게 치솟았다.
어차피 공짜 점심은 없기에 한진해운 투기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들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이에 선행돼야 할 비판은 공짜 점심을 나눠줘 시장 질서를 왜곡시키고 주식시장을 비이성적 도박판으로 만들었음에도 뻔뻔한 태도를 보이다가, 일부 여론에 못이겨 다시 과거의 악습을 재현하려 하는 정부로 먼저 향해야 하지 않을까.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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