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 일명 '서별관회의 청문회'가 내달 초 열린다.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증인에서 빠졌지만, 홍기택·강만수·민유성 등 전직 산업은행 회장은 모두 증인 명단에 포함됐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의 수장을 포함해 46명의 증인과 4인의 참고인이 청문회장에 나온다.
청문회를 주재하는 청문위원들에게 당부하자. 미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왔으면 한다. 이번 청문회는 특정 개인에게 창피를 주기 위한 청문회가 아니다. 말 그대로 수십조 원의 혈세가 투입된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의 과정을 살펴보고,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잘 됐는지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들여다보자는 취지다. 증인들에겐 검찰 수사보다 더 무서운 게 청문회일 수 있다.
기업을 잘못 운영한 경영자, 대출 관리를 잘못한 국책은행, 관리감독에 소홀한 공무원에 대해선 명명백백하게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한다. 죄질이 나쁘면 처벌도 받아야 할 것이다. 누가 책임을 미뤘고, 누가 모럴해저드를 저질렀으며, 누가 횡령과 배임을 했는지, 또 누가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누가 방관했는지,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기 어려운 실체적 진실도 국회 청문회에선 밝혀질 수 있다. 모든 증언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의원, 곧 청문위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상상력도 발휘해달라. 지금 한국의 조선ㆍ해운업이 어려운 것은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 구조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유가 하락과 세계경제 침체라는 경기 순환적 측면도 중요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서 해당 기업의 경영이 어떠했는지, 금융기관의 대출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저 '정부 개입은 안된다', '국책은행은 관리감독을 잘못했다', '기업은 모럴해저드에 빠졌다'는 식의 단선적인 접근을 해서는 실체적 진실에 조금도 다가서지 못한다.
후견지명(後見之明)은 가급적 발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그럴 줄 알았다","그때 왜 그런 결정을 내렸냐","한 치 앞도 보지 못한다"는 식의 질문엔 강한 사후확증편향(hindsight bias)이 숨어 있다. 사후확증편향을 보이기에 앞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라. 당시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던 금융당국자, 국책은행장, 구조조정 실무자의 역할에 자신을 대입해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를 한번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후확증편향을 없앨 수 있다. 그래야 증언석에서 질타를 당하더라도 설득력이 생기고, 청문회를 듣는 국민들 입장에서도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래서 더 넓은 의미에서 의사결정 시스템에 문제는 없었는지, 금융당국과 국책은행간의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살펴봐주었으면 한다.
야당 의원들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서별관회의'라는 명칭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참에 청와대를 끌고 들어가 정권의 무능을 싸잡아 공격하고 싶은 유혹을 참아야 한다. 미운 놈 불러다 놓고 호통을 치면 속은 시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뿐이다. 국민 눈에는 다그치는 놈이나 당하는 놈이나 다 한심해 보인다. 야당으로선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수권정당으로서의 실력과 능력을 입증하기에 좋은 '판'이 펼쳐졌다.
'서별관회의' 자체를 문제 삼는 '소아병적'인 자세에서 벗어나달라. 서별관회의는 김대중정부 때도 노무현 정부 때도 있었다. 관계부처간 이해관계를 협의하고 조율하는 기능은 모든 정부에 필요하다. 만약 서별관회의가 문제라면, 동별관회의라도 만들어서 그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유지돼야 할 기구다.
이의철 금융부장 charl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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