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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콤플렉스⑩]스님을 넘겨뜨린 뒤 서경덕을 유혹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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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 스토리 - 비오는 화담에 옷이 홀딱 젖은 여인이 들이닥치다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이런 수준 높은 논쟁을 벌인 뒤 황진이는 암자에 머무르며 정진을 하라는 스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산을 내려온다. 그리고 몇 달 후 선사의 파계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김탁환 스토리에는 황진이의 육탄 공세나 그것에 결국 굴복하고 마는 지족선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황진이의 입을 빌려 “수행에 임하시는 지족선사의 자세는 송도는 물론 조선 팔도에서도 손꼽힐 정도”였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바꿔버리면 유혹에 약한 인간의 본성을 경계하는 훌륭한 교과서가 되어온 ‘황진이 야동’의 진면목은 영 맨숭맨숭해진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과장되게 만들어지는 까닭은 당시 사회의 억압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무슨 얘기냐 하면 지족선사로 대표되는 불교의 수행이란 현실적인 문제에 무능하고 인간의 욕망 하나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가식적인 공부라는 ‘폄하’가 숨어있다는 뜻이다. 대신 화담으로 대표되는 유학은 성정을 통찰하고 제어하는 내실있는 살핌으로 상찬되는 효과가 생긴다.

기생 황진이가 두 사람을 겨냥해 대담한 테스트를 했고, 거기에 불교는 굴복하고 유학은 견뎠다는 에피소드는 훌륭한 정치적인 선전물이 될 수도 있었다. 이들 이야기에 짜맞추기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지족선사에 대한 자료 발굴이 없는 이상 스토리의 골격을 무단히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족선사의 법명인 ‘지족(知足)’은 황진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말이다. ‘족함을 안다는 것’은 욕망을 조절하고 관리하는 능력에 관한 자부이다. 이름은 그렇게 붙여놓고 실제로는 전혀 지족(知足)하지 못했다는 비웃음이 깔린다.



화담의 초가 하나
서늘하여 신선 사는 곳 같네


열린 창에는 산이 모여들고
물소리는 베개의 빈 속을 채우네


어둑한 골짜기를 바람이 맑게 쓸고
삐딱한 땅이라 나무들이 드문드문 기대어 섰네


그 가운데 거니는 사람
맑은 아침 책읽기를 좋아하네


서경덕의 '산에서 살다(山居)'



花潭一草廬 瀟灑類僊居
화담일초려 소쇄류선거


山簇開軒面 泉絃咽枕虛
산족개헌면 천현열침허


洞幽風淡蕩 境僻樹扶疎
동유풍담탕 경벽수부소


中有逍遙子 淸朝好讀書
중유소요자 청조호독서



[황진이 콤플렉스⑩]스님을 넘겨뜨린 뒤 서경덕을 유혹하러... KBS2 드라마 '황진이'의 하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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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해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한정(閑情)의 시이다. 스스로의 호(號)가 된 ‘화담’은 이런 풍경 속에 있었다. 서경덕은 벼슬을 권하는 한양의 중앙정부의 뜻을 물리치고 지난 왕국인 고려의 왕도인 이곳에서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화담이야 말로 ‘지족’을 실천하는 사람이 기거하는 곳이라 할 만하다.


이 화담 별서(別墅)에 개성의 화류(花柳)가 지분냄새를 풍기며 뛰어든다. 그것도 이 고요한 도학자를 조롱할 목적으로 다양한 유혹 프로그램을 준비한 절색의 황진이다. 자, 그녀를 맞을 준비가 되셨는가.


소세양과의 동거가 있은 뒤 사랑에 대해 잠깐 맛을 보긴 했으나, 남성사회 일반에 대한 황진이의 내밀한 조소(嘲笑)는 더 커졌다. 그는 산 속 깊은 곳의 암자를 찾아 고승을 만났다. 면벽 수도를 하던 지족(知足)은 이런 경우를 예상하지 못한듯 당황을 감추지 못했고 결국 실수를 범했다.


선사(禪師)도 이럴진대 대유(大儒, 큰 유학자)라 한들 이와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느냐 하는 마음으로 그녀는 성거산의 화담으로 들어간다. 봄비 뿌리는 어느 저녁답이었다. 제자들도 돌아간듯 별서는 고요했다.


“어르신, 계십니까?”


안엔 사람이 없는 듯 인기척이 없다. 진이의 목소리가 지나간 뒤에 연못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적막함을 키운다.


“화담 사부님, 안에 계신지요?”


진이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게 누구요?”


여닫이 방문이 삐꺽 열린다. 어둑한 방안에서 단정한 차림의 중년 하나의 얼굴이 보인다.


“저는...”


저는...이라고 말한 뒤 진이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까 하고 말을 가다듬는다. 그 사이, 서경덕은 뜻밖의 방문객을 훑어본다. 우장도 없이 왔는지라 얇은 옷이 다 젖은 여인이다. 화담은 놀라서 뛰어나온다.


“저런...감기 들겠소. 어쩌자고 이런 비오는 날에 여기까지 왔는지요? 어서 안으로 드시오.”


진이가 들어온 뒤 방문을 닫자 좁은 방안에 여인의 향그러운 냄새가 일순 가득해진다.


“소녀, 몸이 떨려서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사옵니다. 젖은 옷을 어떻게 해야할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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