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태영 기자]작년 말 한일 간 극적으로 타결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8개월 여를 맞았다. 합의 이후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합의 '원천 무효' 역풍을 맞은 데 이어 지난 달 '화해ㆍ치유' 재단이 출범하기까지 순탄치 않았다. 특히 재단에 일본 측이 출연할 10억엔을 놓고 자금의 시기와 성격 차를 좁히기 위한 한일 간 줄다리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종적ㆍ불가역적" 논란=작년 12월 28일 오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타결했다. 윤 장관과 기시다 외무상은 이날 회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각각 3개 항의 발표문을 발표했다. 이날 합의는 공식합의문이 아닌 두 장관이 구두로 발표하는 형식을 취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했고, 아베 신조 총리도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시했다. 일본 정부는 물론, 총리대신 자격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시다 외상은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핵심 쟁점이었던 일본 정부의 '법적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고 이 부분은 지금까지도 족쇄가 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측이 앞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전제로 "이 문제(위안부)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최종적 및 불가역적"이란 표현에서 사실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확인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커 여전히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다만 구체적 시행 조치로 일본 측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한국 정부와 설립하고 이 재단에 10억엔을 출연하기로 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에 대해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밖에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향후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을 자제하기로 했다.
◆'지지부진' 재단출범=여러 논란 속 양측의 합의 이후 관심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재단에 쏠렸다. 합의문 중 일본 측이 구체적으로 10억엔을 지원하기로 명시한 만큼 재단 설립에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합의 내용에 대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예상 외의 큰 반발은 관련 재단 설립에 7개월 여가 걸리게 했다.
드디어 지난 달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ㆍ치유' 재단이 공식 출범했다. 재단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중구 순화동 사무실에서 이사회 첫 회의를 열고 재단 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이사장은 재단 설립준비위원장으로 일한 김태현 성신여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가 맡았다. 이사진은 김 이사장을 포함해 김교식 아시아신탁 회장, 진창수 세종연구소장, 이원덕 국민대 교수,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 조희용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소장 등 준비위에 참여한 각계 인사 10명으로 구성됐다.
우여곡절 끝에 재단이 출범했지만 한 달여 동안 '피해자 없는 재단'으로 불리는 등 논란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재단 사업의 정체성을 두고 잡음을 끊이질 않았다. 피해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재단 활동이 무슨 존재 이유가 있느냐는 설명이다. 일부 피해자와 관련 시민단체들은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합의 자체에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나아가 화해ㆍ치유 재단에 맞선 '정의기억재단'을 앞서 발족시켰다.
재단은 피해자 대다수가 재단의 취지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피해자 할머니 37명을 일일이 만나 의견을 들었다며 "반대하는 분이 많지는 않았다. 그분들도 언젠가는 저희와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측의 이 같은 입장차는 앞으로 일본 측이 출연금이 실제 집행할 경우에도 또 다시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일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어떻게 지원할지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재단은 피해자 직접 수혜 사업과 추도를 위한 상징적 사업 등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재단은 10억엔을 모두 피해자 지원에만 쓰기로 하고 임대료ㆍ인건비 등 부대비용은 별도로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0억엔 의미 '설왕설래'=재단이 활동하고 있는 현재 가장 큰 쟁점은 일본 측이 출연할 10억엔의 성격 규정이다. 일본은 이 금액에 대해 배상금이 아니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배상금, 또는 배상금에 준하는 의미로 규정될 경우 앞서 한일 간 합의 내용을 넘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명확한 사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전범국가라는 이미지에 더해 인권탄압 국가라는 불명예 꼬리표를 이어가게 된다.
우리 정부도 이를 의식한 듯 직접 배상금이라고 성격 규정을 하지 않고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냈다. 양 측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최선의 결과로 해석된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측이 출연할 10억엔이 배상금이냐는 질문에 "(10억엔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조치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고, 그 합의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언급은 10억엔이 배상금인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은 피하면서도 '사실상 배상금'이라는 취지의 기존 우리 정부의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조 대변인은 일본 측의 10억엔 출연 시기에 대해 "한일 외교장관간 통화에서 일본 외무대신이 밝힌 바와 같이 일본 국내절차가 진행되야 하기 때문에 구체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재단의) 원활한 사업 시행에 있어서 차질이 없는 시점에 자금 출연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기시다 외무상은 지난 12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일본 측의 국내 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정부예산에서 10억 엔을 신속하게 출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외교가에서는 10억엔 출연이 이달 내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오는 24일 도쿄에서 개최되는 한중일 3개국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한일 외교장관 회담 개최 시에 막판 조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지원을 위한 화해ㆍ치유재단에 일본의 10억엔을 출연하는 문제와 관련한 외교수장간 최종 확인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기시다 외무상은 지난 12일 윤 장관과의 통화에서 일본 국내 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예산 10억엔을 신속하게 화해ㆍ치유재단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노태영 기자 factpoe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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