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어린 시절 언어들이 지나가는 풍경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 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어라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퍼질 대로 퍼져라 고운 노래 한 마디 들려달라고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어라
■ 1932년 동시 작가 윤석중이 지은 이 노래는 입에 익고 귀에 익어서 내 피와 살 같다. 하도 부르다 보니 심심해져서 받침을 모두 빼고 포다포다 도으 더지자,로 불러보기도 하고, 폴달폴달 돌을 덜질잘,로 바꿔보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이 노래가 어린 마음을 붙든 애초의 매력은 아마도 퐁당퐁당이란 의성어일 것이다. 수면에 작은 뭔가가 부딪치며 가라앉는 저 소리는 왠지 재미있고 시원하고 장난끼가 돋았다. 장난감도 없고 놀이터도 없던 일제의 엄혹한 식민지 시절 아이에게 시인은 퐁당퐁당의 유희를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퐁당퐁당은 물소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어른의 말에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모습을 가리키기도 한다. 돌을 던지면 바로 반응하며 물소리를 내는 것처럼 말끝마다 퐁당퐁당 덤벼드는 형국을 꾸짖는 말이다.
어린 시절 저 가사가 전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지 못했다. 냇물의 한쪽에 아이가 앉아, 곡성의 귀신처럼 작은 돌을 토닥토닥 던지고 있고, 다른 한쪽엔 누나가 앉아 나물을 씻고 있다. 일을 하는 누나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작은 돌멩이를 냇물에 던져 물살을 흔드는 장난으로 누나의 눈길을 끌고 싶은 것이다. 혹시 돌이 물을 크게 튀게 해서 누나의 옷을 적시거나 하면, 분명히 화를 낼테니 몰래 조심스럽게 던지고 있는 풍경이다.
누나의 관심을 끌고 싶은 아우의 마음 속엔 심심한 심술과 무료한 장난끼가 그득하지만, 어쩐지 누나의 표정은 부처님처럼 무색하다. 소년이 바라는 것은 그저 던진 돌에 튄 물결이 나아가 누나의 손을 간질여주면 그만이다. 2절에 보면 간질이는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간지러움에 누나가 문득 기분이 좋아져서 그 고운 목소리로 노래 한 자락이라도 불러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노랫말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슬프고 힘겨운 누나의 표정을 달래주려는 동생의 고운 마음이 짚인다. 단순히 장난을 치려는 것이 아니라, 누나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마음이 숨은 것이다.
세상에 기쁜 일도 웃을 일도 없었던 고단한 시절에, 아우는 누이에게 뭔가 위로가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퐁당퐁당으로 생긴 물살이 누이를 기쁘게 한들 얼마나 기쁘게 하겠는가. 그러나, 그런 아우의 마음이 누이에게 전해지기라도 한다면! 누이가 자기를 바라보며 한번 살짝 웃어주기라도 한다면, 소년의 가슴은 이내 콩당콩당 뛰리라. 어쩐지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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