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원 발행에 3000억원 청약
시중 금리보다 높은데도 모집금액 만큼만 청약
미래에셋 누구한테 배정했는지 안 밝혀
금투업계 "미래에셋 계열사에 배정됐을 것"
[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우연일까 예견된 결과일까.
미래에셋증권이 시중 금리 보다 높은 금리에 발행한 '수상한' 후순위채 3000억원 어치에 대해 청약을 받은 결과 정확히 3000억원의 매수 신청이 들어왔다.
최근 채권 투자에 뭉칫돈이 몰리면서 채권 수요가 많은 상황에서 발행된 높은 금리의 후순위채에 모집금액 만큼만 청약이 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미래에셋 측에서는 ‘우연의 결과’라는 반응이고, 금융시장에서는 ‘예견된 결과’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이 발행한 5년 6개월 만기 후순위채 3000억원어치에 대한 청약을 지난달 28일 마감한 결과 3000억원의 청약이 들어왔다.
이에 따라 청약을 한 기관투자자는 모두 청약한 금액만큼 후순위채를 배정받을 수 있게 됐다.
미래에셋증권은 누가 배정받았는지에 대해 “전액 기관에서 배정받았고 미래에셋 계열사는 절반이 안 된다”고만 밝힐 뿐 ‘투자자 보호 사항’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배정 기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번에 발행된 후순위채 상당 부분이 미래에셋캐피탈 등 계열사에 배정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용등급(AA-)이 좋고 채권 수요도 많은 상황에서 미래에셋이 금리가 높은 후순위채를 발행한 이유가 계열사 배정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상 모집 금액을 초과하는 청약이 있을 경우 안분 배분하지만 미래에셋증권은 이번에 후순위채를 발행하면서 “기관투자자의 발행사에 대한 기여도 등을 합리적으로 자체 판단하여 청약 물량을 배정한다”고 명시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발행사에 대한 기여도를 자체 판단해 배분한다는 건 계열사에 배정하겠다는 의미”라면서 “금리가 높은데도 기관투자자들이 청약하지 않은 것은 청약해봤자 돌아오는 물량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IBK기업은행이 지난 4월 10년 만기인 조건부 후순위채 4000억원 어치에 대해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청약을 받은 결과 7600억원의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
당시 금리는 연 2.95%로 미래에셋증권의 후순위채 보다 금리가 낮고, 만기도 길어 조건이 안 좋지만 경쟁률이 2대1에 육박했다.
미래에셋증권은 회사채 대신 후순위채를 발행하면서 연간 50억원 이상의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미래에셋증권과 신용등급(AA-)이 비슷한 CJ E&M은 지난달 30일 12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3년물 1.57%, 5년물 1.789%의 표면이율로 발행했다.
미래에셋증권이 CJ E&M과 비슷한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했다면 후순위채 만기 때까지 절감되는 이자는 300억원에 육박한다.
대신에 이번에 후순위채를 인수한 기관은 2022년 1월까지 연 3.5%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채권을 확보하게 됐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 관계자는 “기존 후순위채 상환과 영업용순자본(구NCR) 비율을 관리하기 위해 후순위채를 발행했다”면서 “현재 미래에셋증권의 구NCR비율은 222%인데 200% 밑으로 내려가면 주가연계증권(ELS) 신규발행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후순위채를 발행하면 구NCR 비율이 251%까지 올라간다”고 덧붙였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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