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축구·태권도 등 예체능은 기본
줄넘기·레고까지 사교육으로 배워
수행평가 예행연습…학원비 月 100만원 들기도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초등학교 1학년 서정이(가명·7·서울 목동)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다음주부터 매일 오전 집앞 태권도학원에서 줄넘기 특강을 받기 시작한다. 큰줄넘기, 음악줄넘기 같은 '놀이형' 운동은 물론 공인급수줄넘기도 연습해 심사대회에 나갈 계획이다. 일주일에 3번은 음악학원에, 2번은 미술학원에 가야 한다. 학기 중에 일주일에 3일을 다녔던 영어학원은 방학 기간 동안 주5회 수업으로 늘어났다. 집으로 배달되는 한자 학습지도 새로 시작했다.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현성이(가명·6·서울 공덕동)이는 올 여름 놀이터에 나오는 시간이 부쩍 줄었다. 오후 3시 유치원이 끝나면 엄마 손에 이끌려 '레고학원'에서 2~3시간을 보내곤 한다. 일주일에 2번은 축구교실에서 또래 친구들과 팀 수업을 하고, 토요일에는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배운다.
초등학교 저학년, 예비 초등학생들마저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통적인 국어·영어·수학 수업에 더해 예·체능 과목까지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 탓이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저학년 때 미술이나 체육 등을 끝마쳐야 한다는 게 요즘 학원가의 정설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많아지는 각종 수행평가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사교육을 통해서라도 아이들이 미리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현성이 엄마 박모(37)씨는 "레고는 집에서 혼자 할 수도 있지만 선생님께 체계적으로 배우면 나중에 수학이나 과학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학원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수영의 경우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의무교과로 편성하고 있지만 박씨는 "학교에서도 처음부터 '물에 뜰 수 있는 아이'와 '못뜨는 아이'로 나눠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아이가 기죽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는 배워서 가야 한다"고 귀띔했다.
학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학부모들의 부담도 커진다. 서정이 엄마 김모(42)씨는 줄넘기 수업에 월 6만원, 피아노 10만원, 미술 8만원, 영어학원 35만원, 학습지 3만5000원 등 총 62만5000원을 올 여름방학 학원비로 지불했다.
박씨의 경우 레고학원은 주1회 1시간 수업에 월 13만원, 축구교실은 월 8만원, 수영의 경우 2달에 24만원을 내고 있다. 정부지원금을 제외한 유치원비 월 40만원을 더하면 아이 한명에 80만원에 가까운 교육비를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박씨는 "영어학원 하나 더하면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월 100만원은 우습게 나가는 셈"이라고 탄식했다.
실제 통계청이 올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생의 일반 교과목 사교육비는 전년대비 0.3% 줄어 들고 예체능 사교육비는 5.4% 증가했다. 과목별로는 국어와 영어 사교육비가 각각 1.0%와 2.1% 감소하고 수학은 전년 수준을 유지한 반면, 미술과 체육은 각각 3.0%, 13.6%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상당수 학부모들이 국·영·수가 아닌 예체능 교육은 선행학습이 아니어서 아이들이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최연주 연구원은 "초등학교 1학년은 발달 면에서 아직 유아에 가까운 나이라 과도한 인지발달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예체능 수업 역시 엄연히 진도가 있고 성취목표가 있다 보니 아이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고,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최 연구원은 또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신뢰가 부족한 탓에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조차 사교육으로 내몰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미리 배우거나 따로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학교 수업시간에 모두 배울 수 있도록 공교육의 내실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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