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유럽연합(EU)과의 이별을 결정했다. 독립당 나이절 패라지 당수가 말한 대로 이것은 '실재하는, 평범한, 건실한' 영국인들(real people, ordinary people, decent people)이 다국적 기업, 거대 정당과 은행에 맞서 거둔 승리일까. 정재계 지도자는 물론 캔터베리 대주교까지 나선 잔류 캠페인을 무산시킨 결과이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따로 있지 않을까. 승리를 거둔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는가.
지난 2월 영국 외교부는 의회에 'EU탈퇴 절차'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EU 탈퇴가 전례 없는 일로서 지난한 협상을 거쳐야 하며, 그로 인한 불확실성의 시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임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탈퇴여부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U 탈퇴를 규정한 EU조약(리스본조약) 제50조는 '미래 양측관계를 위한 틀(framework)을 고려하면서' 협상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여기 포함되지 않은 사항이 모두 협상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탈퇴협상은 영국이 탈퇴의사를 이사회에 통지해야 시작되지만, 일단 협상이 개시되면 여러 사정상 주도권은 27개 회원국이 가지게 될 전망이다. 첫째, EU집행위원회(Commission)에 협상지침을 부여하는 이사회 결정은 컨센서스(전 회원국의 동의)를 필요로 하니 회원국 각자가 거부권을 가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협상결과는 유럽의회의 동의를 거친 후 이사회에서 통상적 경우보다 엄격한 가중다수결(20개국 이상의 지지, 지지국 인구합계가 EU 총인구의 65% 이상)에 의한 승인을 얻어야 한다. 셋째, 협상에 주어지는 시간이 충분치 않은 것도 영국에게는 부담이다. 40여 년간 쌓아온 EU회원국으로서 권리와 의무로부터 이탈하기 위한 합의를 2년 안에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기간 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아무런 보장 장치가 없는 채로 영국의 회원국 지위는 자동 상실되며, 협상기한 연장은 회원국 중 한 나라만 반대해도 불가능하다. 새로운 관계설정에 실패한 채 협상기한 연장도 좌절될 경우, 당장 영국 상품은 EU 시장에서 외국산 취급을 받아 관세를 물어야 하며, 역내 거주하는 200만 영국 국민과 더 많은 수의 여행자들은 EU시민으로 누리던 편의와 권리를 내려놓게 된다. 27개 회원국들은 시간에 쫓기는 영국을 상대로 컨센서스라는 무기를 앞세워 고비마다 제각기 국가이익을 챙기려 할 것이다. 또한, 탈퇴절차를 규정한 EU조약 제50조는 탈퇴한 회원국이 재가입을 원할 경우에 신규가입 절차를 규정한 49조를 따르게 하고 있다.
전 회원국에 대한 배려는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탈퇴에 관한 EU의 법률적 입장은 이처럼 냉혹해, 영국이 꿈꾸는 EU와의 행복한 이혼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보인다. 난관은 이것으로 다가 아니다. EU 잔류를 원하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행보도 이미 가시화하고 있고 북아일랜드의 향배도 심상치 않다. 영국이 EU를 떠나기 전에 스스로 분리될 지도 모를 일이다. 역외국과의 관계 재정립도 중요한 문제다. 집행위원회가 권한을 행사하는 통상과 같은 분야는 더욱 어렵다. EU가 체결한 양자 간 무역협정도 더 이상 영국에는 적용되지 않게 되며, EU가 진행 중인 미국, 일본과의 무역협상에서도 물론 배제된다. 양허관세율 등 세계무역기구(WTO)와의 약속에 대하여도 기존 EU 입장이 아닌 영국 입장을 새로이 반영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161개 회원국과 협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도 영국에게 우위가 주어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영국의 선택은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기본협력협정 등 한·EU간 협정, EU의 대북제제 등과 관련하여 별도의 장치를 마련하게 될 영국의 향배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영국으로서는 우선 국내정치적 갈등을 관리하는 한편, 최소한 2년은 단일시장을 비롯한 EU와의 관계 재설정을 위한 협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형편이다. 우리는 금융시장 등 브렉시트가 국제경제에 미치는 파장에 대처하는 한편 영국, EU와의 관계 재설정에 충분히 대비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브렉시트가 이행되는 과정을 잘 이해하고 관찰할 필요가 있겠다.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민의 선택은 자국은 물론 전 세계를 전례 없고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과연 지난 6월 23일 '탈퇴(leave)'에 표를 던진 1740만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았을까 궁금할 뿐이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