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파견…국내서는 유일
집안 반대에 못 이룬 선수 꿈 대신 ‘휘슬’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황인태 프로농구 심판(37)이 꿈의 무대 올림픽에 나가 휘슬을 문다.
황 심판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8월6~22일)에 파견된다. 올림픽에 나가는 심판은 그가 유일하다. 홀로 떠나는 만큼 책임이 무겁다. 올림픽 경기를 운영하는 심판은 서른 명이며, 아시아에는 네 명이 있다. 황 심판의 올림픽 진출은 한국농구연맹(KBL)이 2014~2015시즌부터 국제농구연맹(FIBA) 경기규칙을 적용하는 등 활발히 교류했기에 가능했다.
그는 “FIBA 대회에 나가면 심판들에 대한 평가가 있다. 지난해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 열린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9월23일~10월3일)에서 칼 융브랜드 현 심판위원장(52)과 루보미르 코틀레바 전 심판(70) 두 분이 다 오셨는데 그때 좋게 보신 듯하다”고 했다.
그와 농구의 인연은 우연으로 시작됐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까지 축구를 좋아했다. 친구가 농구장에 한 번 가보자고 해 따라갔다가 매료됐다. 1994년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마지막 승부’ 영향도 있었다.
황 심판은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는 배구, 어머니는 농구선수 출신이다. 고향이 마산인데 부모님은 지방은 운동 여건도 좋지 않고, 힘들다고 반대하셨다. 고등학교(마산고) 2학년 때 농구부가 있어 입단테스트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감독님과 아버지는 친구 사이셨고, 사전에 (입단이) 안 되는 걸로 입을 맞추셨더라”고 했다.
꿈은 잠시 접어두고 대학에 진학했다. 부산외국어대 중앙아시아어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농구와의 연은 계속 잇고 싶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선배들과 취미로 농구를 했다고 했다. 그러다 동아리 선배인 신기록 현 FIBA 국제심판(45)을 만났다. 선배는 대한농구협회(KBA)에서 주관하는 심판교실을 다니고 있었다.
농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이때쯤 들었다. 그는 “선수가 되기 힘들면 ‘심판으로서 선수들과 함께 부대껴보자’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선배에게 농구규칙서를 받아내는가 하면, 서울에 심판강습회는 꼼꼼히 챙겼다”고 했다.
황 심판은 2003년 휴학을 하고 ‘신인 심판교실’ 8기에 입학했다. 2004년 3월 심판으로서 첫 데뷔경기를 했다. KBA에서 5년간 심판을 보며 국제심판 자격증을 취득했다. 2006년 2월 1급 자격증을, 2007년 12월에는 싱가포르에서 국제심판자격증을 획득했다. 2008년에 KBL 심판이 됐다.
한국농구를 대표해 브라질로 떠나는 황인태 심판은 “사실 부담스럽기도 하다. 여태까지 제 자신을 돌아봤을 때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더 배워야 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주하진 않았나는 생각도 든다. 후배 심판들도 생각해야 할 시기다.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심판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오래 잘 하고 싶다”고 했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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