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걷는 길이 넘쳐나는 요즘 ‘한국관광지 100선’에서 1위로 꼽힌 문경새재. 길 곳곳에 퇴계 이황, 김시습, 율곡 이이 등 선비들의 역사가 남아 있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옛길의 매력은 직접 걸어봐야 안다.
사뿐사뿐 걷고 싶어지는 옛길
문경새재
새재의 험한 산길 끝이 없는 길
벼랑길 오솔길로 겨우겨우 지나가네.
차가운 바람은 솔숲을 흔드는데
길손들 종일토록 돌길을 오가네.
시내도 언덕도 하얗게 얼었는데
눈 덮인 칡덩굴엔 마른 잎 붙어 있네.
마침내 똑바로 새재를 벗어나니
서울 쪽 하늘엔 초승달이 걸렸네.
-정약용의 『겨울날 서울 가는 길에 새재를 넘으며』에서
영남의 선비들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려면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어야 했다. 한양에서 부산을 잇는 영남대로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가 문경새재다. 새재(鳥嶺)는 ‘새도 알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부산에서 출발한 선비는 매일 70리(28킬로미터) 정도를 걸어야 보름 후쯤 한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이 길뿐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영주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죽령이나 김천에서 영동으로 넘어가는 추풍령도 있었다. 그러나 죽죽 미끄러지거나 추풍낙엽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았나 보다. 이에 반해 문경(聞慶)은 ‘경사스러운 소식’이란 뜻을 지녀 금의환향하고 싶었던 호남의 선비들도 먼 길을 돌아 한양으로 가기도 했단다. 그 길이 생긴 지 600년이 넘었으니 오래되어도 참 오래된 길이다.
나와 사진 찍는 후배는 옛길 박물관에서 시작하여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을 거쳐 제3관문 조령관까지 걸었다. 그러나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한 고개라는 문경새재는 의외로 걷기 수월했다. 완만하고 평탄했다. 옛길의 정취가 남아 있기도 하거니와 퇴계 이황, 김시습, 율곡 이이 등 선비들의 시비가 마음을 고요하게 했다. 병자호란 때 최명길과 여신의 전설이 깃든 성황당, 홍건적의 난을 피하려 찾은 공민왕의 흔적이 남아 있는 혜국사나 대궐 터, 드라마 <궁예>의 마지막 촬영지인 팔왕폭포, 길손들이 비를 피하던 바위굴, 낙동강 3대 발원지의 하나인 조령약수 등 볼거리와 전설이 얽혀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느린 걸음이 더욱 느려졌다.
문경새재 나들이의 화룡점정, '새재묵조밥'
문경새재는 문경새재 관리사무소에서 제3관문까지 7.5킬로미터 정도이며 왕복하려면 다섯 시간 남짓 걸린다. 문경새재를 걷고 오면 허기가 지기 마련. 입구에는 토속 음식점과 민박집이 여럿 있는데, 도토리와 청포로 만드는 새재묵조밥은 꼭 맛봐야 한다. 후배와 나는 소문난식당에서 도토리묵조밥과 청포묵조밥을 비웠다. 산나물과 탱탱한 도토리묵이나 녹두로 쑨 청포묵을 쓱쓱 비벼 먹는데 문경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이라고 들었다.
산촌에서는 흔해 빠진 게 비빔밥인데 문경새재의 묵조밥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문경새재는 다른 지역보다 도토리나무가 많아 도토리 수확량이 많았다. 이 고장 사람들은 불린 쌀과 조로 지은 밥에 도토리묵과 흔한 산나물을 넣고 비빔밥처럼 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겼다고 한다. 그러나 산촌 사람들을 목숨을 이어준 구황식품은 1900~1930년대쯤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하여 건강식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Infomation
문경시청 http://tour.gbmg.go.kr
문경새재도립공원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054-571-0709
소문난식당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876, 054-572-2255, 08:00~19:00
글=책 만드는 여행가 조경자(http://blog.naver.com/travelfoodie), 사진=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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