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들불처럼 번져가던 1997년 성탄절 아침.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 커피숍에 세 명의 남자가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김용환 비상경제대책위원장과 정인용 전 경제부총리, 비대위 대변인 김민석 의원이었다. 뒤늦게 또 한 사람이 합류했다. 김 위원장이 단호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비대위에 와서 일 좀 해야겠네."
스스로를 낭인이라 불렀던 이헌재가 김대중(DJ) 정권과 인연을 맺는 순간이었다. 일주일 전 DJP연합(국민회의 김대중 + 자민련 김종필)으로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DJ는 당선되자마자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위원장에 자민련 부총재 출신 김용환을 앉혔다. 1974년 김용환 재무부장관 밑에서 금융정책과장으로 일했던 이헌재는 정치적 격변과 국가부도위기 상황에서 그렇게 비대위 기획단장이 되어 나라경제의 명운을 좌우할 구조조정의 칼을 잡는다.
이헌재는 회고록 '위기를 쏘다'에서 운명이 그와 DJ를 엮었다고 썼다. 외환위기와 맞섰던 비대위 기획단에는 역사의 운명을 맞게 될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조세연구원 부원장 유일호. 그는 당시 재정경제원, 산업자원부, 한국은행 등에서 차출된 6인의 구조조정 실무단 멤버의 한 명이었다. '초미니 정부'로 불린 비대위 실무단은 두 달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거침없이 해치우게 된다.
역사는 돌고 위기는 반복되는가. 외환위기에서 탈출한 지 16년, 시장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경제가 더 어렵다는 소리가 쏟아진다. 한국의 간판기업들이 줄줄이 생사를 건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 최일선의 저격병이었던 유일호. 그가 운명처럼 박근혜정부의 경제팀장이 되어 경제개혁과 구조조정의 사령탑으로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오래전 이야기를 꺼낸 것은 구조조정 실전 경험에 대한 기대감에서다. 외환위기의 포화를 뚫고 전진한 63일 간의 전투력은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상황은 물론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 구조조정 방식도 같을 수 없다. 그러나 나라경제와 기업의 운명이 걸렸다는 엄숙한 현실은 똑같다.
이번 구조조정에서 또 하나의 기대는 정치권의 변화다. 정부의 구조조정 선창에 야당이 화답한 것은 이례적이다. 4ㆍ13총선에서 제1당에 올라선 더불어민주당과 제3당으로 자리 잡은 국민의당이 협력을 다짐한 것은 총선 민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협치를 하라' '경제를 살리라' 요구했고 두 당은 경제에 최우선하겠다고 약속한 터다.
그뿐 아니다. 야당이 집권을 노린다면, 나아가 집권에 성공한다면 이번 구조조정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발목 잡는 야당'의 이미지를 씻어 수권정당의 면모를 과시하는 것은 물론 금융공기업과 거대기업을 부실로 몰아간 현 정부의 실정을 파헤치는 일거양득의 기회가 될 것이다. 만일 야당이 이해당사자를 의식해 적당히 끝내거나 시간을 끌어 다음 정권으로 떠넘기면 어떻게 될까. 힘 커진 만큼이나 야당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권을 잡더라도 추락한 경제에 부실의 암 덩어리까지 짊어진 채 출발할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에 영광은 없다. 고통만 있을 뿐이다. 길게 보면 성공한 구조조정은 나라경제와 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만, 수술하는 순간의 고통만큼은 피할 수 없다. 기업은 살을 도려내고, 종업원은 일자리를 잃으며, 금융회사의 채권은 휴지가 된다. 요란하게 시작했던 많은 구조조정이 용두사미로 끝났던 이유다.
낙관은 이르다. 부채비율이 7300%에 이를 때까지 정부의 낙하산, 채권은행의 무능, 경영진과 노조의 도덕적 해이가 하나 되어 굴러 온 대우조선은 구조조정의 지난함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시기적으로는 정부의 힘이 빠지고 공무원들이 눈치 보기 시작하는 정권 종반부다. 본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양적완화'라는 어설픈 용어를 놓고 벌어진 논란이나 중앙은행의 역할을 둘러싼 정부와 한은의 줄다리기도 불길한 징후다. 유일호의 실전 리더십, 달라진 야당이 우려와 혼란을 거둬내고 구조조정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
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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