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정부가 악의적인 영업비밀 침해 행위에 대해 손해 발생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책임을 지우는 징벌적 손배해상 제도를 도입하는 등 관련 법제 정비에 나선 것은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돌리는 행위에 철퇴를 가하고 빠른 분쟁 해결을 통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6일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기존까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었던 영업비밀 무단 보유ㆍ유출 및 그에 대한 시정을 거부하는 행위, 상품디자인에 대한 모방행위까지 처벌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벌금액도 기존보다 10배 오른다. 또 기술을 빼돌리다 적발되면 자신의 영업비밀이라도 증거로 제출해야 하고 손해액 산정에서도 불이익을 입는다. 중소벤처업계는 그간 기술침해 입증을 위해 대기업의 자료 제출을 강제하는 이른바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영미법계 국가의 민사 재판에서 발달한 제도로 가해자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크면 실제 손해보다 훨씬 큰 배상금을 내도록 해 사실상의 제재를 가하는 제도다. 일례로 과거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당시 국내에서 소송이나 합의로 이뤄진 배상 규모는 2억~7억원에 그친 반면 미국 사법절차를 거친 피해자들의 경우 많게는 20억원까지 배상책임이 인정된 바 있다.
가까운 중국의 경우 불량식품을 팔다 적발된 사업자는 실제 손해액과 함께 최대 판매대금의 10배를 배상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2011년 하도급법을 개정하며 처음 도입됐고, 지난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손봐 올해부터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해졌다.
분쟁해결 속도도 빨라진다. 사법부는 올해부터 특허·디자인·상표 등 지식재산 관련 소송을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고등법원이 소재한 지방법원에 집중시키고 항소심은 전문성을 갖춘 특허법원이 맡도록 하고 있다. 지재위는 기술유출 행위 처벌을 위한 형사재판 관할도 고법 소재지로 집중하고, 절차 진행이 빠른 '집중심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 기술유출 침해상태를 수습하기 위한 판매금지 가처분 등 신청사건의 처리기한을 법으로 못 박아 신속히 처분이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그간 가처분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1년 안팎의 시간이 걸려 피해기업이 제때 구제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그 밖에 소송비용 등이 부담스러운 중소기업을 위해 조정제도 이용을 위한 통합사무국을 운영하고, 공공기관의 기술침해에 대해서는 시정권고 조치할 계획이다.
수사당국도 사법절차에 대응하는 전담수사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전문 수사인력 보강과 함께 내년 상반기까지 전국 17개 경찰청에 산업기술유출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피해 신고·제보를 적극 활용한다. 대기업이 하청업체 등 중소기업을 상대로 부당하게 기술자료를 요구하거나 빼돌리는 경우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유관기관 협력을 토대로 현장 직권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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