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네덜란드는 축구의 교본"
김정남 "가장 아름다운 축구"
최순호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선수"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축구계 혁명가."
지난 24일(한국시간) 향년 68세를 일기로 타계한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그는 뛰어난 기술과 축구에 대한 지능, 남다른 철학으로 현대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다. 특별한 면이 많았다. 하루에 담배 80개비를 피우는 애연가였고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하거나 자신을 추켜세우는 언행을 해 '게으른 천재'로 불렸다. 그는 "축구는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한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크루이프는 우리 축구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 김호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72)은 "크루이프가 노력하지 않은 천재라는 말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승부근성이 강했다. 훈련 때 체력을 강화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언덕을 달리는 경쟁에서 늘 1등을 했다"고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국가대표를 지낸 김 총감독은 "당시 크루이프가 중심이 된 네덜란드는 축구계의 교본으로 불렸다. 지도자와 선수들도 네덜란드 대표팀의 경기와 훈련 과정을 비디오로 분석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크루이프가 속한 네덜란드 대표팀을 중심으로 유럽이 세계 축구를 지배하면서 국내에서도 이 흐름을 주목했다. 박정희 정권의 실세인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주도로 1967년 3월 창설한 '양지 축구단'이 대표적이다. 당시 양지팀의 대표 선수였던 김호는 김용식 감독(1985년 사망)을 필두로 105일 동안 유럽 전지훈련을 다녀오기도 했다. 양지팀 대표 출신이자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을 지휘한 김정남 한국 OB축구회 회장(73)은 "(크루이프는) 지도자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축구를 했다"고 했다.
최순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52)은 크루이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가장 큰 영감을 준 선수"라고 했다. 최 부회장은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경기력에 매료됐다. 한때 선수생활을 그만둘까 고민했지만 크루이프를 동경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그는 큰 키(185㎝)에 긴 팔다리를 이용해 성큼성큼 상대를 돌파하는 크루이프의 기술을 자주 흉내냈다. 발뒤꿈치로 공의 방향을 바꿔 상대 수비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크루이프턴'이 대표적이다. 크루이프의 상징인 등번호 14번도 달았다.
1964년 네덜란드 프로축구 아약스에서 프로로 데뷔한 크루이프는 이듬해 리누스 미헬스 감독(2005년 사망)을 만나면서 재능을 꽃피운다. 1972년 아약스의 정규리그 우승과 네덜란드 축구연맹(KNVB)컵, 유럽축구연맹(UEFA) 유러피언컵(유럽챔피언스리그 전신), UEFA 슈퍼컵, 인터컨티넨털컵(클럽월드컵 전신)까지 5관왕을 하는데 기여했다. 미헬스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중심 선수로 뛰며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준우승했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를 시상하는 발롱도르도 세 차례(1971·1973·1974년) 수상했다.
그는 1985년 아약스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토털사커를 체계화했다. 1987년 유러피언 위너스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스페인 FC바르셀로나 감독으로 일한 1988~1996년에도 성과를 냈다. 1991~1994년까지 4년 연속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제패했다. 그가 정립한 전술은 현대 축구의 근간이 되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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