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국경 부근의 한 마을. 국경을 맞댄 두 나라의 갈등으로 한 나라에서 마을주민 전원 철수, 마을 폐쇄라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
마을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집과 논밭, 일터마저 잃게 된다. 갑작스런 마을폐쇄 결정에 주민들은 살림살이까지 고스란히 놔둔 채 생활터전에서 내쫓긴다.
가상의 얘기다. 하지만 비슷한 일은 현실에도 존재한다. 개성공단이 폐쇄돼 수많은 중소기업이 문을 닫거나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근로자들은 일터를 잃었다. 정부는 지원 방식으로 기업인들이 입은 모든 피해를 구제해 줄 것 같이 떠들었지만 당사자가 얘기하는 실상은 다르다.
"돈 빌려준다고 하고, 세금 미뤄주겠다는 하는 게 답이 아니다. 정부 발표를 보니 3년 전 입주기업들은 부르지도 않고 기자들만 불러 선전 브리핑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바뀐 게 뭐가 있는가."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의 한탄이다.
통일부는 지난 18일에서야 '개성공단 기업 실태조사 설명회'를 열고, 사실상 피해조사에 착수했다. 원부자재와 완제품 피해를 입증하면 거기에 맞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가동중단과 철수가 이뤄지면서 정부가 요구하는 자료마저도 제대로 챙겨오지 못한 기업이 많은 게 현실이다. 입주기업인들은 회사를 살리려고, 피해를 복구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발을 구르고 있다.
철수 결정은 정부가 내렸지만 뒷감당은 기업인들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수백명의 근로자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각자 알아서 새 직장을 구하거나 실업급여로 버텨야한다.
2013년 개성공단 가동중단 당시 통일부 장관을 맡았던 류길재 전 장관은 22일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부작용이 있더라도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했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는 고통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통 감내의 몫은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아래 어느 일방의 희생을 강요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
투자 실패의 책임은 투자를 결정한 기업에 있다. 그런 차원에서 위험이 크다는 걸 알고 들어가지 않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했던 정부에 되물을 얘기다.
개성공단 폐쇄의 옳고 그름 여부와 합당한 피해 보상은 별개 문제다. 언제쯤이면 상식적이고 세련된 정부의 일처리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일이 왜 이 모양인가.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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