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은행들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과열 경쟁으로 불완전판매를 넘어 1만원짜리 소액 단위의 억지 가입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의 자율 통제를 강조하면서 현장점검에는 나서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18일 A은행 한 직원은 "13개의 ISA 계좌를 만들긴 했는데 그 중 7개는 명의만 지인의 이름을 빌려서 내 돈 1만원씩을 넣었다"면서 "회사에서 실적을 워낙 강조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편법이라도 써야 했다"고 말했다. 불완전판매를 넘어 금융실명제까지 위반한 사례다.
실제로 지난 14~16일 사흘간 51만5423명이 2159억원을 가입했는데 은행의 1인당 ISA 평균 가입금액은 29만원에 불과하다. 증권사는 293만원이다. 은행에서 소액 계좌가 다수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융소비자원은 은행과 거래하는 회사의 직원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1만원짜리 ISA 계좌를 만든 사례들을 다수 파악하고 있으며 조만간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해 금감원에 정식 조사를 의뢰하고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법적인 고발 조치까지 취할 방침이다. NH농협은행의 경우 ISA 판매 첫날인 지난 14일 전체 가입자의 절반에 가까운 고객을 유치하면서 조합원 등을 무리하게 동원해 불완전판매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7일 시중은행 준법감시인들을 불러 소비자 피해가 나타나지 않도록 관련 법규 준수를 당부했다. 하지만 당분간 현장점검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완전판매에 대한 불안감이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현장점검보다 금융사들이 스스로 내부통제 시스템을 잘 갖춰서 불완전판매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금융사들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내부통제 기능을 강화하면서 사후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때만 일벌백계한다는 방침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2013년에 재형저축을 시작할 때는 영업점 평가에 반영하거나 실적 할당을 하지 말라고 공문을 보내는 등 깊이 관여했으나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서 “금융사들 스스로 경쟁해봤자 도움이 안 되고, 수익률이 높으면 고객들은 저절로 따라오더라는 판단을 하도록 해야 한다. 매번 디테일하게 관여하면 금융사들이 배우는게 없을 것 같아서 거리를 두고 보려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방식이 금융산업의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자율적 경영 능력을 높인다고 보는 인식이다.
이 관계자는 또 “재형저축 가입 초기에도 1주일 정도 지나니 안정됐던 것처럼 ISA도 초기의 과열 경쟁 분위기가 지나가면 곧 소프트랜딩(연착륙)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철응 정현진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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