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1년채 안된 곳도 해제 요청 잇따라
해제 동의률 30% 두고도 '논란'…정비구역 기준 재정비 등 대안 마련해야
[아시아경제 조은임 기자]노후 주거지 정비사업 중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정비구역 지정 후 오랫동안 사업속도가 나지않던 곳이 속속 해제되고 있는 데 이어 지정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곳에서도 해제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정비사업 추진으로 인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는 그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정비구역 지정과 해제 기준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 졸속 추진과 해제로 인한 주민갈등과 비용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최근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1년 안팎에 불과한 지역의 주민들이 구역지정 해제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일 열린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에서도 해제를 요청하는 2개의 안건의 동시에 올라왔다. 신대방역세권 도시환경정비구역과 광진구 구의동 592번지 일대 주택재건축 정비구역이 대상이다. 신대방역세권의 경우 지난해 7월, 구의동의 경우 지난해 1월 각각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신대방역세권은 불과 8개월만에 지정을 해제해달라는 공식 요청이 들어온 셈이며, 구의동의 경우도 1년1개월 후 해제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문제는 두 구역의 안건에 대한 도계위의 결정이 달랐다는 점이다. 신대방역세권은 안건을 보류시켰고 구의동은 해제하도록 결정했다. 두 구역 모두 구역 해제요청을 할 수 있는 주민 동의율인 30%를 넘겼는데도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재정비사업 추진이 부당하다며 구역지정 해제를 요청했다 보류 처리된 신대방역세권 주민들은 당장 반발했다. 주민들은 도계위 결정이 발표된 다음날인 지난 4일 오후 서울시청을 항의방문,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린 이유를 따지며 곧바로 해제해달라고 요구했다.
정비구역 지정을 해제해 달라는 요구가 과거 지정된 곳이 아닌 비교적 최근 지정된 곳의 주민들에 의해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 개발 이후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정비사업이 착수되면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가야 하는데 새 거처를 마련할 돈이 충분치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각 가구 별로 실태조사를 거치면서 정비사업 추진에 대한 의사를 확인했지만 추진 과정에서 추가분담금 문제와 더불어 과거만큼 재건축 후 차익 실현을 볼 수 없다는 부분에서 해제 의견이 높아진 걸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더라도 정비사업 후 원주민 정착률은 크게 낮다. 과거 서울 뉴타운의 원주민 정착률은 20% 안팎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개발 후 새로 들어선 주택에 입주하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얘기다. 당초 정비구역을 지정하면서 주민들간 합의나 사업의 필요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추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의 동의로 추진된 정비사업이 소수의 의견으로 막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비사업 구역을 지정을 하려면 주민 제안의 경우 토지 등 소유자의 3분의2이상, 토지면적 2분의1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구청장이 입안하는 경우에는 동의률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도계위에 자문을 올리거나 정비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3분의2이상 혹은 50%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한마디로 정비사업이 지정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주민의 과반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해제요청에는 30% 이상의 동의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비구역이 해제됐을 경우 노후지역을 개선하기 위한 추가 대안마련도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시는 최근 뉴타운 해제지역이나 4층 이하 단독ㆍ다가구ㆍ다세대 주택밀집지역 관리와 재생모델 개발을 위한 용역을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때도 주민들의 의견수렴과 동의를 얻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정법상 해제요건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차후 다른 도시재생으로 매끄럽게 연결되는 연결고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은임 기자 goodn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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