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김종인의 드리프트가 시작됐다. 김종인 체제 출범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작동방식과 방향이 급격히 돌아서기 시작했다. 물론 핸드브레이크를 내린 사람은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다. 김 대표의 드리프트는 일단 3가지 모양으로 나타났다.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중단, 경제 중심주의 강조, 야권통합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달 23일부터 시작된 테러방지법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은 당초 우려과 달리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거리에 시민 필리버스터가 전개되는가 하면 무제한 토론에 참여한 의원들의 후원 계좌에 후원금이 답지하고, 토론에 나선 정치인의 이름이 주요 포탈사이트 검색어 1위를 기록하는 등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하지만 무제한 토론이 지속될 수록 출구전략에 대한 고민은 커졌다.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리냐, 덜 걸리냐 하는 문제였을 뿐 무제한 토론만으로는 테러방지법 입법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행 국회법(다음 본회의에서는 무조건 표결)과 선거구 미획정이라는 정치상황은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아설 수 없었다.
더민주로서는 무제한 토론을 끝내는 것은 어려운 결정일 수밖에 없었다. 무제한 토론을 계속 벌인다면 3월10일 임시국회까지는 어떻게 버텨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총선 자체가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무제한 토론을 중단한다면 지지층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이같은 난제에서 '중단'을 결정했다. 강경론과 온건론 사이에서 갈팡질팡 해왔던 더민주는 김 대표의 결정으로 출구를 찾기로 했다. 잡음과 혼란은 있었지만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가 12시간31분의 토론을 끝으로 무제한 토론 정국은 끝났다.
김 대표가 무제한 토론을 중단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번 총선이 '박근혜 정부 경제 심판론'으로 가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실 국민들에게 확실한 경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야당이 줄기차게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취임 초기부터 '유능한 경제정당'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경제정당 노선은 당내 문제, 정치적 현안 등에 밀려 후순위로 돌아서기 일쑤였다. 김 대표는 이번에 이같은 정치·현안 중심의 강경 투쟁 노선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또한 김 대표는 야권 분열 상황에서 독자생존으로 흘러가던 상황에도 브레이크를 걸었다. 분당사태를 겪으며 야권이 분열된 상황을 겪으며 분열된 야당은 입으로는 '통합'을 외치면서도 통합을 위한 가시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전 통합의 깃발을 내세운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하지만 4일 국민의당이 최고위원회의 의원총회 연석회의 등을 통해 야권통합론의 거부 입장을 반대하고 나섬에 따라 통합 논의는 차질을 빚은 상태다. 하지만 통합 논의가 야권 내부에서 상당한 기대감을 안겨줬기 때문에 당대당 통합이 어렵더라도 수도권 후보자간 연대 등의 구체적 선거 대응의 가능성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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