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여기 오기 전 한강에 다녀왔습니다. 시너(휘발유)라도 뒤집어쓰면 알아줄까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제3차 총회에서 만난 한 40대 근로자 김명환 씨(가명)의 말이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김 씨는 머리에 '피해 보상'이라고 적힌 붉힌 띠를 두른 채 침통한 표정으로 총회가 열린 대회의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네자, 김 씨는 명함이 없다고 했다. 회사에서 해고된 지 1주일이 넘었다며 명함도 건네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서러워했다.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을 둔 한 집안의 가장인 그는 "처음엔 다른 직장을 구해보려고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다"면서 "솔직히 40대 후반에 기술자도 아닌 관리직인 자신을 써 줄 회사가 어디 있겠냐"고 씁쓸해 했다.
김 씨는 억울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다른 기업의 직원들도 대부분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가 나온 지 4일 만에 해고된 이도 있었다.
이날 구성된 개성공단 근로자 협의회에 따르면 공단 상주 근로자 800여명에 지원 부문을 포함하면 개성공단 업무를 담당했던 근로자들은 총 2000여명에 이른다. 협의회는 2000명 가운데 약 90%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11일 전면중단 조치 이후 20여일이 흘렀다.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투자한 손실액의 90% 보상은 물론, 최저금리 대출을 약속했지만 기업 및 근로자들이 느끼는 현실은 정반대였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대출을 받으려고 찾아간 시중은행으로부터 9%대 금리를 제시받았다고 했다.
지금은 더 이상 이번 사태에 대해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은 대한민국 가장들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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