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자금 사기계좌에 이용되면 전기통신금융사기 행위 종료…처벌조항 해석, 법리 최초 선언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보이스피싱 인출책이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는 전기통신피해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사기,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및피해금환급에관한특별법(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중국인 A씨에 대해 전기통신금융사기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사기 범죄에 대한 혐의만 유죄로 판단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A씨는 지하철역 물품보관함에 보관된 타인 명의 체크카드를 꺼내 그 카드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을 인출해 지정한 계좌로 입금하는 인출책 및 송금책이다.
A씨 등 보이스피싱 일당은 대출회사 직원을 사칭해 정부에서 시행하는 저리 대출을 해준다면서 이에 필요한 수수료 등을 입금하라고 권유해 송금을 받은 뒤 이를 가로채는 방식의 ‘보이스피싱’ 범행을 저지르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돈을 송금하면 이를 인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가 검찰에 기소됐다.
보이스피싱 송금·이체 행위는 물론 인출 행위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죄에 해당하는지가 이번 사건 쟁점이다. 1심은 전기금융사기 위반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심은 "이 사건 특별법 구성요건은 전기통신금융사기 조직의 현금인출책의 현금인출 행위를 새로이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점은 위 특별법 제2조 제2호가 송금·이체행위만을 규정할 뿐 '인출행위'를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1심은 "피고인의 현금인출 행위는 타인으로 하여금 자금을 송금·이체하도록 한 이후에 위 자금을 인출한 행위로서, 이미 이 사건 특별법 구성요건에서 정하는 목적이 실현된 이후에 이루어진 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보이스피싱 인출책이 타인 명의 계좌를 통해 타인의 정보를 입력해 재산상 이익을 실현하는 행위도 전기통신금융사기 특별법 위반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된다"면서 "원심은 이 사건 특별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타인의 정보를 입력하는 행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면서 항소했다.
2심도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명문의 형벌법규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심은 "죄형법정주의의 엄격해석원칙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처벌조항은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한 피해자의 송금·이체행위에 해당되는 정보 등 입력행위만을 처벌하는 조항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면서 1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자금이 사기이용계좌로 송금·이체되면 전기통신금융사기 행위는 종료되는 것이므로, 그 후 사기이용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거나 다시 송금하는 행위는 범인들 내부 영역에서 이뤄지는 행위일 뿐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인출행위는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대상이 된 사람의 정보를 이용한 행위’가 아니라서, 이 사건 처벌조항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김창석,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이들 대법관은 "대포통장 계좌인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하는 행위는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 보아야 하고, 위 계좌의 명의인도 이 사건 처벌조항에서 말하는 ‘타인’에 해당한다"면서 "이 사건 인출행위는 이 사건 처벌조항 제2호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므로 원심판결은 파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피해자의 자금이 이른바 대포통장 계좌인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로 송금·이체된 후, 그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정보처리장치에 위 계좌 명의인의 정보 등을 입력하는 행위는 이 사건 처벌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해 이 사건 처벌조항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선언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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