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보다 가로주택사업 뜨는 까닭
정비구역지정 등 필요없어 2년이면 모든 절차 끝나
정부, 특례법 제정해 활성화 나서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서울에서 재개발 추진이 백지화되는 사례가 올해 들어서도 잇따르고 있다. 주민들의 자발적 요청으로,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직권으로 해제되고 있다.
낡고 불편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구역 지정이 된 이후 제대로 진척이 되지 않은 까닭이다. 철거 후 대체 주거공간을 찾기 어려운 주민들이 적지 않아 해제되는 정비구역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 대안으로 가로주택정비사업이나 재개발리츠 등이 부각되고 있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정비구역 지정이 해제된 곳은 96곳(정비예정구역 포함)에 달한다. 전년보다 30곳 늘었다. 서대문구 홍은22구역(10월) 등 서울시가 직권으로 해제한 뉴타운을 비롯해 영등포구 신길15구역(5월, 재건축), 관악구 봉천8-1구역(11월, 재건축) 등 대규모 단지가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새해 들어서도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이 더딘 곳을 중심으로 해제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일 열린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관악구에서 6곳, 도봉구에서 1곳이 각각 정비예정구역,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관할구청장의 요청에 따라 해제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관악구의 경우 2004년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으나 그간 사업이 추진되지 않았고 도봉구는 조합원이 조합을 해산한 후 구역해제를 위한 공람과정에서도 특별한 의견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비구역 지정은 주거환경개선사업이나 재개발ㆍ재건축 등 대규모 도심정비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전초단계다. 정비사업을 위한 조합이나 사업시행 인가를 받기 전 계획이 수립되고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있어야 한다. 해당지역 주민이나 관할구청에서 정비구역을 해제를 요청한 건 정비사업이 사실상 중단됐거나 앞으로도 진척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업성이 낮거나 주민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추진동력을 잃은 것이다.
최근 부쩍 해제요청이 늘어난 건 관련규정이 바뀌면서 과거에 비해 해제절차가 수월해진 측면이 크다. 2012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개정되면서 정비예정구역이더라도 3년 이상 신청이 없으면 해제하도록 일몰제가 적용됐다. 개정안 공포 후 3년이 흐른 지난해부터 일몰제 적용대상이 생긴 만큼 앞으로도 정비구역 해제요청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시는 보고 있다.
서울시 재생협력과 관계자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비사업이 활발히 진행해 대부분 사업장이 정비구역 해제에 소극적이었으나 주택ㆍ건설경기가 가라앉으면서 해제절차도 수월하게 바뀌었다"며 "정비사업의 경우 실제로 민간이 참여해 최소한의 사업성이 담보돼야하는 만큼 여건이 나빠지면서 차질을 빚는 곳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도정법에 따르면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으면 재개발ㆍ재건축을 비롯해 주거환경개선사업, 도시환경정비사업 등 대부분의 정비사업이 불가능하다. 반면 '미니 재건축'이라 불리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가능하다. 최근 정비구역 해제가 잇따르는 가운데 가로주택정비사업에 관심을 갖는 조합이 늘어난 배경이다. 대규모 정비사업의 경우 통상 8~9년 정도 걸리는 반면 정비구역지정 절차 등이 필요없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은 2년 정도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
지난달 서초동 남양연립은 정비구역이 해제된 곳 중 처음으로 가로주택사업을 진행키로 해 눈길을 끌었다. 정부도 가로주택 등 소규모 정비사업에 대해 절차를 간소하게 하는 특례법을 제정키로 하는 등 활성화에 나섰다. 서울시 역시 일제히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과거 방식을 지양하는 만큼 보존ㆍ재생에 초점을 맞춘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용식 수목건축 대표는 "정비사업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같이 투자가 아닌 주거환경 개선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각 지역마다의 특색이나 문화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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