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이란 대립 극한…지정학적 위험 최고조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새해 벽두부터 중동이 종파 분쟁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고 있다. 중동발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면서 유가 하락, 미국 금리 인상, 중국 경기둔화로 신음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가 연초부터 출렁일 것이란 우려가 크다.
분쟁의 발단은 이슬람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 2일(현지시간) 시아파 지도자들을 포함한 테러 용의자 47명을 처형하면서부터다. 사형이 집행된 사람들 중에 시아파의 정신적 지주로 통하는 성직자 님르 알님르(56)를 비롯, 시아파 유명인사 4명이 포함됐다.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란 시위대는 자국 내 사우디 대사관과 영사관을 공격했고 급기야 사우디는 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사우디 출신으로 이란과 이라크에서 공부한 알님르는 2011년 중동 민주화 혁명인 '아랍의 봄' 때 사우디 내 시아파 저항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수니파가 90%를 차지하고 있는 사우디에서 알님르는 정치인들의 눈엣가시였고 왕권에 대한 위협으로 통했다.
알님르는 2012년 체포돼 2014년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란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비폭력 투쟁을 이어온 그의 처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는 갑작스럽게 그를 사형시켰다. 특히 시아파 입장에서는 존경하는 정신적 지주가 수니파 테러리스트들과 함께 처형된 것에 대해 크게 분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우디는 이 같은 시아파 반발을 예상하면서까지 왜 무리수를 뒀을까. 그 답은 사우디가 현재 처한 경제ㆍ정치적인 '내우외환'에서 찾을 수 있다.
사우디는 2011년 봄 민주화 운동 때 오일머니를 총동원해 복지확대 정책을 펴면서 국민을 달랬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저유가로 사우디 재정은 바닥이 났다. 국민에게 지급하던 보조금을 축소하고 휘발유 가격을 올릴 만큼 형편이 좋지 않다.
지난해 1월 즉위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의 건강 이상설 등 사우디는 정치적으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가 주도한 예멘 내전과 시리아 내전 역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종교적 권위를 바탕으로 한 사우디의 역내 정치적 리더십도 위기를 맞고 있다.
사우디는 이란 핵 협상 타결로 이란과 서방의 관계가 개선된 것도 불만이다. 한마디로 사우디 정부는 국내외 위기를 타개하고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분쟁은 단기간에 해결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는 뿌리 깊은 중동의 종파 분쟁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이란과 이라크는 물론 쿠웨이트, 예멘, 바레인 등 시아파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들의 저항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글로벌 경제에도 악재다. 유가 하락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들은 잇따라 긴축모드로 돌아서고 있다. 산유국 국부펀드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6조달러가 넘는 오일머니 회수에 들어간 상황에서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는 세계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전 세계가 이슬람국가(IS) 퇴치에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중동 지역의 최대 리스크는 수니파ㆍ시아파 간 종파 싸움"이라면서 "사우디는 특히 이란 쪽으로 중동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긴축, 원자재 부진, 글로벌 부채 문제 등과 함께 중동을 포함한 지정학적 위험들이 올해 세계 경제를 괴롭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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