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서울역고가의 오래되고 낡은 상판이 26일부터 철거에 들어간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9월 보행자 중심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공원화 구상계획을 처음 발표한 이후 시와 중앙정부 부처간 엇박자로 1년 넘게 공방이 이어졌다. 지난 13일부터 차량통행을 금지시킨 후 주변 우회도로를 중심으로 차량정체가 심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안전도 문제가 불거진데다, 서울의 중앙역임에도 주변에 사람을 끌어 모을 만한 유인이 없다는 점에서 시가 추진하는 개발계획을 우호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오래된 고가를 공원으로 만들어 역을 중심으로 한 보행자 중심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구상은, '대선'과 '박원순'이라는 요소를 제하고 본다면 과거 우리의 유산을 남기는 동시에 개발도 진행할 수 있는 절충안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공사를 하루 앞둔 25일 시는 앞서 공개한 설계안에 대한 시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 개방행사를 진행했다. 고가에 진입하기 위한 보도가 없던 탓에 진입로 쪽에는 따로 임시 구조물을 만들고 일일이 안전통제를 하며 사람을 들여보냈다.
박 시장이 밝힌대로 보행자 중심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원과 함께 관련한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보행중 교통사고가 빈번할 경우,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막연히 보행중심 공간을 만들겠다는 건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보행중 사망한 비율이 37.6%로 전체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평균치(16.5%)의 2배가 넘는 수준이며 가장 낮은 뉴질랜드, 핀란드 같은 나라보다는 3배 이상 높다. 그만큼 걷는데 친숙한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 김승남 부연구위원은 "보행권을 신장하고 보행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이 2012년 제정됐으나 정책을 추진하는 체계나 세부시책 내용 측면에서 여러 한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부연구위원과 같은 연구소 박수조 연구원이 최근 정리한 자료를 보면, 보행과 관련한 법제는 앞서 언급한 보행안전법 외에도 도로교통법, 교통안전법,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지속가능 교통물류 발전법 등 다양한 법에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현 관련법만으로는 기본적인 보행권이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판례상 횡단보도 등 일부를 제외한 공간에서 운전자가 보행자를 보호할 의무가 없는 것으로 해석돼 보호규정이 매우 제한적인 공간에서만 효력을 갖는다"며 "보도가 없는 도로에서 보행자에게 보장된 도로 양쪽의 폭이 좁아서 생기는 사고가 잦은 만큼 일반적인 보행로 범위를 넓히거나 재조정해 이면도로에서 보행활동을 보장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보행정책을 총괄적으로 다루는 기본계획이 없어 관련한 중앙 정부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계획을 수립한데다, 각 지자체에서도 지역별로 계획을 수립해 내용상 겹치거나 예산이 중복되는 일이 빈번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 연구위원은 "보행자의 자유로운 통행을 제약하는 '도로교통법'의 구속력을 약화시키고 보행자 보호조치를 강화해 안전과 편의 증진에 기여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보행환경과 행태를 다루는 관련 법령의 세부조문을 흡수ㆍ통합해 보행권 신장과 관련 사업이나 정책을 보행안전법 중심으로 재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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